[우종근의 史史로운 이야기] 日食과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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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고대 서주(西周)의 유왕(幽王)은 웃지 않는 여인 포사(褒似)의 웃음을 사기 위해 거짓 봉화를 올리다가 북방 민족 견융에게 죽임을 당한 난봉꾼이었다. 정치가 혼란했던 그의 치세 중반인 기원전 776년 가을 일식이 있었는데, <시경 소아(詩經 小雅)>에는 이를 소재로 한 노래가 한 곡 전한다.
"시월에 들어선 초하루 신묘일 / 일식이 있었으니 아주 나쁜 조짐이로다. / 지난달에 월식이 있더니 오늘 또 일식이니 / 이 백성은 정말로 가엾구나 . "
중국의 옛 기록에는 일식 현상을 '해가 먹혀 버렸다(日有食之)'는 말로 대신했다. 달이 해를 먹어 버리는 일은 음양의 원리를 거스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므로 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일식은 하늘이 인간 세상에 보내는 경고 가운데 가장 엄중한 것이었다. 특히 정치 혼란에 즈음해 나타나는 일식은 황제 개인의 부덕을 꾸짖는 최고의 경고장으로 받들어졌다.
여씨 일족을 몰아내고 왕조를 되찾은 전한 문제(前漢 文帝)는 즉위 이듬해 달이 해를 먹는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일식은 하늘이 짐을 경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짐은 아래로 백성을 돌보지 못하고 위로는 해와 달과 별의 밝음에 누를 끼쳤으니 그 부덕함이 실로 크다. " ―<사기 효문본기>
일식이 나타나면 황제는 반성문만 쓰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소복을 입고 재계하면서 소찬을 먹고 가무음곡을 끊었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당 현종 같은 경우는 '꼰대' 신하의 시시콜콜한 훈계도 경청해야 했다.
"폐하는 군자와 친하고 소인을 멀리하며 여인의 베갯송사를 물리치고 헐뜯는 말에 귀기울이지 마시라."(親君子, 遠小人, 絶女謁, 除讒慝) ―<자치통감>
하지만 달이 해를 먹는 하늘의 변고를 둘러싼 신비성은 이미 춘추전국 때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천문관들은 초하루(朔日)라는 특정일에만 일식이 나타난다는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일식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일식은 달이 해를 가리는 현상(日食者,月掩之也)일 뿐이며, 일식이 나타나는 것은 일정한 법칙에 따른 것이지 정치의 잘잘못에 달린 것이 아니다(食有常數,不在政治)'라고 까발리는 이단(?) 사상가도 나왔다.
그럴수록 황제의 도덕률을 강조하는 일식의 정치적 의미가 더욱 강화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일식이 있을 때 황제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통치의 맨얼굴을 분식하는 훌륭한 장치였던 것이다. 백성들은 그때마다 하늘의 의(義)가 과연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참을 인(忍)자를 또 새겼고, 왕조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인간의 도리를 강조한 사마천의 합리적 정치 사상이 버티고 있었다.
"하늘에 이변이 생길 때 군주가 할 일은 첫째로 덕을 쌓는 것이고 다음은 정치를 닦는 것이며,셋째는 대책을 취하는 것이고 넷째는 귀신에게 비는 것이며, 가장 나쁜 것은 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사기 천관서(天官書)>
엊그제 이 땅의 사람들은 하루종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에서는 46년 만에 보는 최대의 천상쇼 일식이 펼쳐졌고, 여의도 국회에선 의원들의 지상쇼가 생중계됐다. 하늘을 끌어들여 정치를 운영할 줄 알았던 선인들의 지혜를 되돌아보게 된 하루였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
"시월에 들어선 초하루 신묘일 / 일식이 있었으니 아주 나쁜 조짐이로다. / 지난달에 월식이 있더니 오늘 또 일식이니 / 이 백성은 정말로 가엾구나 . "
중국의 옛 기록에는 일식 현상을 '해가 먹혀 버렸다(日有食之)'는 말로 대신했다. 달이 해를 먹어 버리는 일은 음양의 원리를 거스르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므로 이를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일식은 하늘이 인간 세상에 보내는 경고 가운데 가장 엄중한 것이었다. 특히 정치 혼란에 즈음해 나타나는 일식은 황제 개인의 부덕을 꾸짖는 최고의 경고장으로 받들어졌다.
여씨 일족을 몰아내고 왕조를 되찾은 전한 문제(前漢 文帝)는 즉위 이듬해 달이 해를 먹는 사건이 발생하자 곧바로 성명을 발표했다.
"이번 일식은 하늘이 짐을 경계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짐은 아래로 백성을 돌보지 못하고 위로는 해와 달과 별의 밝음에 누를 끼쳤으니 그 부덕함이 실로 크다. " ―<사기 효문본기>
일식이 나타나면 황제는 반성문만 쓰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소복을 입고 재계하면서 소찬을 먹고 가무음곡을 끊었다. 이걸로도 모자라서 당 현종 같은 경우는 '꼰대' 신하의 시시콜콜한 훈계도 경청해야 했다.
"폐하는 군자와 친하고 소인을 멀리하며 여인의 베갯송사를 물리치고 헐뜯는 말에 귀기울이지 마시라."(親君子, 遠小人, 絶女謁, 除讒慝) ―<자치통감>
하지만 달이 해를 먹는 하늘의 변고를 둘러싼 신비성은 이미 춘추전국 때부터 깨지기 시작했다. 천문관들은 초하루(朔日)라는 특정일에만 일식이 나타난다는 경험 지식을 바탕으로 일식 시간을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심지어 '일식은 달이 해를 가리는 현상(日食者,月掩之也)일 뿐이며, 일식이 나타나는 것은 일정한 법칙에 따른 것이지 정치의 잘잘못에 달린 것이 아니다(食有常數,不在政治)'라고 까발리는 이단(?) 사상가도 나왔다.
그럴수록 황제의 도덕률을 강조하는 일식의 정치적 의미가 더욱 강화된 것은 아이러니였다. 일식이 있을 때 황제가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통치의 맨얼굴을 분식하는 훌륭한 장치였던 것이다. 백성들은 그때마다 하늘의 의(義)가 과연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면서 참을 인(忍)자를 또 새겼고, 왕조는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물론 그 밑바닥에는 사람 사는 세상에서 인간의 도리를 강조한 사마천의 합리적 정치 사상이 버티고 있었다.
"하늘에 이변이 생길 때 군주가 할 일은 첫째로 덕을 쌓는 것이고 다음은 정치를 닦는 것이며,셋째는 대책을 취하는 것이고 넷째는 귀신에게 비는 것이며, 가장 나쁜 것은 이를 무시하는 것이다)." ―<사기 천관서(天官書)>
엊그제 이 땅의 사람들은 하루종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하늘에서는 46년 만에 보는 최대의 천상쇼 일식이 펼쳐졌고, 여의도 국회에선 의원들의 지상쇼가 생중계됐다. 하늘을 끌어들여 정치를 운영할 줄 알았던 선인들의 지혜를 되돌아보게 된 하루였다.
편집위원 rgbac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