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의 '식언(食言) 정치'가 도를 넘고 있다. 여야 간 합의 뒤집기를 밥먹듯이 하고 걸핏하면 마음에도 없는 의원직 사퇴카드를 꺼내기 일쑤다.

한나라당은 6월 임시국회 개의와 함께 '서민살리기 국회'를 공언했다. 민생살리기 5대 법안 등 서민법안 30여개를 우선 처리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렇지만 정작 6월국회에 들어가자 미디어법 처리에 당력을 집중하면서 민생법안은 뒷전으로 밀렸다. 민생법안은 아예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지도부는 뒤늦게 회기 종료 직후 당정 태스크포스(TF)를 가동해 법안 처리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약속했지만 9월 정기국회까지 미디어법 강행처리로 인한 여야의 극한 대치가 이어질 공산이 높고 예산심사,국정감사 등 다른 현안이 대기하고 있어 이 또한 지키지 못할 공약(空約)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은 지난 3월2일 미디어법에 대해 100일간 여론을 수렴한 뒤 6월국회에서 표결처리키로 한나라당과 합의하곤 6월국회에서 여론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합의처리에 대한 원천무효를 선언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정국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100일간의 여론수렴 절차가 한나라당에 의해 좌절됐기 때문에 합의사항의 전제조건이 무효화됐다"며 합의파기를 선언한 것이다. 앞서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이명박 대통령 사과 등 5개 조건이 관철되지 않으면 국회를 보이콧하겠다고 큰소리쳤지만,여권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자 결국 보름 만에 조용히 꼬리를 내리고 국회에 들어왔다. 정동영 무소속 의원은 4월 전주 덕진에 출마하면서 '동작을에 뼈를 묻겠다'던 지난 총선의 약속을 깨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국민이 뽑아준 의원직을 '협박용 카드'로 이용하고 이내 말을 바꾸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조원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나라당 측 간사는 지난 1일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5일까지 (비정규직법) 해결이 안 되면 책임을 지고 의원직을 사퇴하는 게 맞다"며 사퇴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자신이 제시한 시일인 5일이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안상수 원내대표가 지난 3일 제출한 사퇴서를 찢어버렸다"고만 답변한 후 의원직 사퇴 주장을 번복했다.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사퇴하기 위해서는 사퇴서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해야 하지만 조 의원은 원내대표에게만 사퇴서를 냈고 이후 의원직 사퇴 논란은 흐지부지됐다. 민주당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사퇴서를 만들어 대표에게 맡겼지만 이 또한 조 의원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구동회/민지혜 기자 kugij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