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 어디까지] 죽봉 들고 보도블록 던지고… 시위에 짓밟힌 평택의 주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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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기지 사태이후 3년만에 또… 우리가 무슨 죄"
"민노총 평화집회 한다더니"… 주민들 공포에 떨어
"민노총 평화집회 한다더니"… 주민들 공포에 떨어
"도대체 평택이 무슨 죄를 지었기에 3년 만에 또다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나요. " 쌍용차노조의 평택공장 불법점거 파업 65일째인 25일 오후.공장에서 500여m 떨어진 아파트 입구에서 다섯 살배기 딸을 꼭 안은 채 불안에 떨던 주부 황모씨(38)는 "평택에 사는 게 죄"라며 공중을 날아다니는 수백여개의 보도블록을 피해 급히 아파트 안으로 피신했다.
이날 오후 3시 평택공장 공권력 투입에 항의하는 민주노총 조합원 5000여명은 평택역 앞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가진 뒤 공장 인근 아파트단지까지 4.5㎞를 행진하며 거리 선전전을 펼쳤다. 오후 6시께 집회가 허용된 이곳 아파트단지까지 도착한 조합원들은 평화집회를 하겠다던 약속대로 집회를 끝내고 발길을 돌리는 듯했으나 이내 "쌍용차 노조가 물을 지원해 달라고 긴급 문자메시지를 보내와 공장 안으로 물을 전달하러 가겠다"며 공장 진입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오후 6시40분께 이들은 순식간에 폭력 시위대로 돌변,주변도로의 보도블록을 깨 공장 앞 100여m 지점에 차벽 등으로 바리케이드를 형성하고 대치 중이던 경찰을 향해 던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날아드는 수백여개의 보도블록으로 인해 토요일 오후 한가롭게 공원을 산책하던 주민들로 가득했던 아파트단지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시민들은 날아오는 벽돌을 피해 숨을 곳을 찾느라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오후 7시께 경찰은 살수차 2대를 동원해 물대포를 뿌리며 공장에서 1㎞가량 떨어진 곳까지 이들을 밀어붙였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이번엔 길이가 3m가량 되는 수백 개의 죽봉을 꺼낸 뒤 땅에 내려쳐 끝을 뾰족하게 만든 뒤 다음 공격에 들어갔다. 죽봉은 금세 '죽창'으로 변했다. 이들은 또 보도블록조와 죽창조로 나눈 뒤 10명 1개조로 횡대를 갖춘 뒤 보도블록조가 보도블록을 던지고 경찰이 전진하면 뒤에 대기하던 죽창조가 나서는 식으로 경찰과 대치했다. 무시무시한 죽창의 모습에 보충수업을 마치고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휴대폰을 꺼내 다급한 목소리로 "엄마"를 외치며 도움을 요청했다.
오후 8시께 시위대는 공장에서 3㎞ 떨어진 '법원사거리'를 점거하고 오후 11시까지 시내 곳곳에서 시위를 계속했다.
이날 시위에는 죽봉 500여개와 쇠파이프 600여개,망치 등이 등장해 평택시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시위대 진압을 위해 경찰이 헬기에서 투하한 봉지 최루액으로 지나가던 시민들은 눈물과 콧물을 흘려야 했다. 본격적인 휴가가 시작되는 주말의 평택은 이처럼 공포와 비명,악다구니가 가득한 전장터로 변했다.
이날 시위에 대비해 평택역과 주요 길목에 60여개 중대 6000여명,공장 주변에 30여개 중대 3000여명 등 모두 90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한 경찰은 오후 11시까지 이어진 시위현장에서 시위대 31명을 연행했다. 25일 새벽까지 수㎞에 이르는 도로에 널브러진 보도블록을 치워야 했던 평택시 관계자는 "총 31곳, 625㎡(200여평)에 이르는 보도블록이 파헤쳐져 500만원 상당의 피해를 입었다"며 "공공시설물 외에 인근 아파트의 시설물들도 훼손돼 피해액은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3년 전 쌍용차공장에서 10㎞밖에 떨어지지 않은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에서는 주한미군 기지확장에 반대하던 민주노총 조합원 등 시위대가 경찰과 군인을 향해 죽봉과 각목을 휘두르는 시위를 벌여 100명이 연행됐다. 9년 만의 최대 공안사건으로 기록되며 '평택사태'라고까지 불렸던 당시의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평택시민들은 이날 3년 만에 또다시 외부세력으로 인해 폭력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됐다. 송명호 평택시장은 이날 오전 공장 정문에서 정갑득 민주노총 금속노조 위원장에게 "3년 전에도 커다란 고통을 당했던 평택시민들"이라며 "42만 평택시민들이 안정된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어하는 꿈만은 지켜달라"며 호소했다. 그러나 그의 호소는 이날 오후 날아다니는 보도블록과 죽창 대열,경찰의 물대포와 최루액 살포 속에서 물거품이 됐다.
평택=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