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외화 위폐 감별사 인증서를 보유한 은행원이 처음으로 생겼다. 우리은행 수신서비스센터에서 외국 통화 출납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신도섭 차장이 그 주인공이다.

위폐 감별 능력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HSBC가 준 인증서여서 더욱 의미가 있다. 그동안 HSBC에서 외화 위폐 감별 연수를 받았던 은행원은 더러 있었지만 신 차장처럼 테스트를 통과해 인증서(Certificate of Achievement)를 딴 사람은 없었다.

그동안 위폐 감별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꼽혔던 서태석 외환은행 부장은 HSBC BOA가 운영하는 위폐 감별 교육과정을 이수했지만 인증서는 받지 않았다. 서 부장은 2001년 정년 퇴직했으나 뛰어난 능력 때문에 곧바로 부장급으로 재채용돼 아직도 현장에서 뛰고 있다.

신 차장이 외화 위폐 감별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월 수신서비스센터에서 외국 통화 출납 업무를 맡으면서였다. 어릴 때부터 화폐 수집을 취미로 삼는 등 남다른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그를 사로잡은 것은 '슈퍼 노트(초정밀 위조달러)'였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진폐인 것 같은데 위폐라고 하니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고 한다. 신 차장은 "HSBC나 BOA가 혹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했다.

그때부터 감별사를 향한 눈물겨운 행군이 시작됐다. 주머니에 100달러짜리 지폐 10여장을 넣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만지작거리고 돋보기로 살펴봤다. 미국 중앙은행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위폐 감별 노하우를 탐독하고 국가정보원 등 위폐 감별에 관한 노하우를 알려 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지난 3월 학수고대하던 기회가 왔다. HSBC로 위폐 감별 연수를 갈 수 있게 됐다. HSBC는 아시아에서 외화 지폐 도매 거래의 60~70%를 도맡고 있는 은행이다. 아시아에 있는 외화의 대부분이 HSBC에 모이고,여기서 감별받은 뒤 다시 은행으로 나가는 일종의 '달러 허브'다.

그러나 연수 과정은 기대와는 딴판이었다. 일반적인 것들만 가르쳐 줄 뿐 핵심 노하우는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 강사와 다투기도 했고,독학으로 알아 낸 위폐 감별 노하우를 밑천 삼아 그 곳 전문가들과 하나씩 교환하는 '거래'도 했다.

5월 2차 연수에 이어 6월 3차 연수를 간 그는 최종 테스트를 신청했다. 웬만큼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테스트조차 허락하지 않는 HSBC였지만 지난달 11일 테스트를 실시하겠다는 통보를 해 왔다. 100달러 지폐 50장을 주고 그 안에 섞여 있는 슈퍼 노트 15~16장을 골라 내는 시험을 치렀다. 한 장이라도 놓치거나 잘못 짚으면 탈락이다. 주어진 도구는 돋보기 하나뿐이고 시각과 청각,느낌에만 의존해야 한다. 달러화에 이어 엔화,위안화까지 이어진 시험에서 그는 적중률 100%로 시험을 통과했다. 그는 "위폐 감별의 최고봉은 촉감과 색상으로 알아 내는 오감 감별"이라며 "이제는 저급한 위조 지폐는 보는 즉시 판별할 수 있고 중급 슈퍼 노트도 10여 초면 찾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다음 달부터 외화 거래가 많은 영업점을 대상으로 위폐 감별 업무를 시범 실시한 후 전 영업점으로 확대 시행할 계획이다.

김인식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