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수돗물 생산 설비의 절반이 멈춰서있습니다. 상수도 부문에 투입된 국민 세금의 절반은 헛돈이었다는 뜻입니다. "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7일 발표한 '준공공부문 혁신 보고서'에서 지속적인 준공공부문의 확장 움직임으로 인한 폐해의 단적인 예로 상수도 사업을 꼽았다. 상수도시설의 평균가동률은 1995년 69.5%에서 2006년 50.8%까지 떨어진 상태다. 비싼 돈을 들여 만든 수돗물의 절반을 바다로 흘려보내는 꼴이라는 게 전경련의 지적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이 광역 상수도를 담당하는 한국수자원공사와 업무조정 없이 자체적으로 상수도 관련 기관을 만든 결과다.

◆국민 경제 발목 잡는 '그림자 정부'

준공공부문은 정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비상업적인 공익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으로 정의된다. 정부와 하는 일이 비슷하고 예산 중 상당 부분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그림자 정부'로도 불린다.

그림자 정부가 쓴 예산은 2007년 175조4000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정부예산 156조5000억원보다 12%가량 많다. 준공공부문에 투입되는 정부 지원금은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중앙정부가 준공공기관에 배분한 준조세는 2007년 기준으로 50조5791억원에 달했다. 4년 전인 2003년보다 73.9% 늘었다.

정부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이끌고 있는 준공공부문은 정관상 설립 목적 사업을 늘리거나 출자회사를 신설하는 등의 방법으로 손쉽게 덩치를 키우고 있다. 민간의 요구를 수렴해 조직을 신설하거나 사업 범위를 확대한 사례도 있지만 세력 범위 확장,퇴직자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 등을 목적으로 불필요한 중복투자가 일어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게 전경련의 지적이다.

전경련은 끊임없이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준공공부문의 속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한국광물자원공사를 들었다. 이 기관은 1994년 1개였던 해외사업소를 6개로 늘렸으며 해외 자원개발을 위한 자회사도 16개나 설립했다.

준공공기관들이 난립하다보니 상수도 사업의 사례처럼 기관별 업무가 중복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경기도에는 토지와 택지,주택 개발을 담당하는 기관이 10곳에 달한다. 경기도가 운영하는 경기개발공사 외에도 용인시,안산시,남양주시 등 9개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별도의 개발공사 조직을 두고 있다.

◆중복 사업 정리,민간위탁 늘려야

전경련은 영국이나 일본처럼 준공공기관의 팽창을 통제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국민 부담이 줄어든다고 진단했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가 준공공기관을 신설하거나 기존 준공공기관의 사업을 확대하기 앞서 기존에 유사한 기능을 맡고 있는 기관이 있는지를 점검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제3자가 준공공기관 사업 확장에 타당성을 심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 기존 사업을 계속 영위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도 주기적으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민간 사업자와 경쟁하고 있는 준공공기관의 사업 영역은 아예 민간으로 이양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지방의 준공공기관에는 통 · 폐합을 통한 사업영역 광역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