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주식투자하다 돈 잃은 인간들, 작전세력에 당했네, 친구 말 듣다 망했네, 지들 머리 나빠서 깨졌다는 소리는 죽어도 안 한다.

영화 ‘작전’ 보신 분들, 이 대사 기억나십니까.

저도 정확히는 기억 안 나지만 대충 그런 얘기였죠.

주식투자하다 손해 보신 분들한테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일리가 없지는 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미 FTA와 관련해 미국에서 힘깨나 쓰신다는 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꾸 ‘머리 나쁜 주식투자자’ 생각이 나서 해 본 소리입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의 제프리 쇼트 수석연구위원이 21일 서울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미국 정부의 통상정책에 영향을 많이 미치는 기관이라고 합니다.

당연히 이 분이 한·미 FTA에 대해 어떤 얘기를 꺼낼지에 관심이 갔죠.

어김없이 자동차 얘기가 나왔는데요.

이 분 얘기는 “한·미 FTA를 체결한 2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일부 수정을 해야 한다.

어떻게 다르냐.

2007년에 미국의 연간 자동차 판매대수가 1700만대 가까이 됐는데 올해는 1000만대도 못 넘을 거라는 거고요.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그때도 시원찮기는 했지만 저 지경까지 될 줄은 몰랐다는 식의 얘기도 했습니다.

시장이 저리 망가졌는데 한·미 FTA 발효해 봤자 한국 너네 별볼일 있겠냐, 그리고 우리 미국 요즘에 너무 힘들다, 그런 얘기죠.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미국의 정부 당국자들이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얘기이고 쇼트 수석이 지난 2월에 한국에 와서 했던 얘기 재방송한 겁니다.

세상이 기원 전과 기원 후가 아니라 리먼 사태 이전과 리먼 사태 이후로 나뉜다는 말도 있는데 2년 전과 상황이 달라졌으니 협정도 바꿔야 한다는 말이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또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 가서 또 바꿔야 하는 건가를 생각해 보면 황당할 따름이죠.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가장 합리적이라고, 온갖 잘난척은 다하던 그들도 실제로는 급하면 바짓가랑이부터 붙잡고 늘어지는, 그렇고 그런 인간들이라는 사실은 지난 몇달 사이 우리 모두가 보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한국은 미국에 연간 70만대를 수출하는데 미국은 한국에 7000대밖에 못 판다고 하죠.

그런데 한국은 미국에 자동차를 70만대나 수출한 적이 없습니다.

50만대 선이죠.

다만 현대자동차가 미국공장에서 해마다 25만대가량을 만들어 파니 그걸 합치면 70만대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근데 그런 식으로 따지면 해마다 한국에서 10만대 넘게 팔고 있는 GM대우는 어느 집 자식입니까.

FTA는 무역에 관한 협정인데 FTA 얘기를 하면서 무역이 아닌 걸 슬쩍 얹어서 들고 나오는 겁니다.

‘무역장벽’ 때문에 한국에서 미국 차가 안 팔린다고도 합니다.

자기들이 자동차 어설프게 만들어서 안 팔린다는 소리는 죽어도 안 하는 게 머리 나쁜 주식투자자하고 똑같죠.

장벽이 있다면 그것은 미국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의 무역항 어딘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요타와 포드 사이에, 메르세데스벤츠와 캐딜락 사이에, 현대차와 크라이슬러 사이에 있을 겁니다.

GM, 포드, 크라이슬러가 저렇게 된 이유가 뭐냐.

노조가 어쨌네, 제품 포트폴리오가 어쨌네, 돈놀이에 재미를 붙였네...

진짜 이유를 정말 쉽게 알고 싶다면 차를 한번 타 보라고 저는 이야기합니다.

창문은 삐거덕거리고 글로브박스를 열면 ‘덜컹’ 하면서 내려앉고 액셀러레이터 좀 밟았나 싶었더니 연료 게이지가 두세칸 내려가 있는 경험은 21세기에 쉽게 할 수 있는 경험이 아니거든요.

미국이 머리는 나쁠지 몰라도 힘은 아직 세죠.

그래서 한·미 FTA라는 게임이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일 테고요.

‘국경 없는 글로벌 시대’, 멋있으라고 지어낸 말이고 여전히 현실은 국가 단위의 경쟁과 국익, 그리고 힘의 논리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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