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까지 중국 게임시장은 한국 기업의 독무대였다. '미르의 전설','뮤' 등의 대작(大作)들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며 한국 게임의 시장점유율은 70%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떨어진 점유율은 2007년 20%대까지 추락했다. 작년에는 던전앤파이터 등 대형 게임 출시로 점유율 40%대를 회복하기는 했지만 하루 앞을 내다보기 힘들다는 게 게임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중국시장 점유율이 이처럼 출렁인 데는 중국 게임업체들의 기술 발전,국산 게임의 인기 부침 등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시장 경쟁 요소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중국 정부의 게임 규제라고 입을 모은다. 자국 게임 시장을 점령한 한국산 온라인 게임을 견제하기 위해 중국 정부가 직 · 간접적으로 규제 수단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실제 2004년 중국 정부는 게임산업에 대한 규제를 대폭 강화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콘텐츠 장벽을 넘지 않고서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시장 확대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中텃세로 고전하는 한국 온라인게임

게임개발사 올엠은 최근 '루니아전기'의 중국 서비스를 중단했다. 서비스를 맡은 중국 CDC게임즈가 60만달러가량의 로열티를 지급하지 않고 버티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다. 위메이드,엠게임,한빛소프트 등의 국내 업체들도 중국 파트너로부터 로열티를 제대로 받지 못해 속앓이를 했다. 게임 표절,매출 집계 논란 등 현지 파트너와 겪는 분쟁도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이 심한 중국 정부의 게임 규제가 이 같은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국내 게임사 대표는 "중국 업체들이 현지의 까다로운 규제환경을 교묘히 활용해 황당한 요구와 비상식적 행동을 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업체들은 게임을 서비스할 수 있는 허가권(판호)을 받는 일부터 차별을 겪는다고 주장한다. 중국 정부가 자국산 게임은 3개월이면 처리해 주는 반면 외국산 게임에 대해서는 6개월 이상 시간을 끌기가 일쑤라는 것이다. 외국계 기업이 자국 내 게임업체 지분을 49% 이상 갖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외국 업체들의 진출도 원천봉쇄했다.

게다가 중국 현지 서비스 파트너만 변경해도 허가를 다시 받게 하고,그 과정에서 업체 간 소송이 발생하는 경우엔 허가권을 아예 내주지 않는다. 중국이 게임 규제를 강화한 것은 국산 온라인 게임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2003년 이후다. 한국을 겨냥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권기영 한국콘텐츠진흥원 중국사무소장은 "앞으로 중국 시장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지 정부의 폐쇄적인 조치에 대해 보다 전략적인 사고를 가질 필요가 있다"며 "최근 중국 정부가 자국 내에서 생산된 콘텐츠를 적극 육성하는 분위기라 게임 개발 단계부터 이 요건을 충족하도록 기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불리한 저작권 분쟁도 골치

한류 열풍을 주도해 온 드라마,영화,음악 등의 콘텐츠는 불법복제 등의 벽에 막혀 고전하고 있다. 콘텐츠를 무단 사용하는 것은 물론 상표권 등을 현지업체들이 선점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국산 대표 캐릭터 중 하나인 마시마로는 중국 업체가 상표권을 선점해 지루한 소송 끝에 이를 되찾아 오기도 했다. 인기 게임인 '오디션''던전앤파이터' 등도 중국 진출을 미리 예상한 현지 업체가 '상표권 알박기'를 해 난관에 빠지기도 했다.

저작권이나 상표권 분쟁이 발생해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 자국 업체에 유리한 판단을 내리는 일이 많은 것도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중국 업체가 게임을 표절했다는 이유로 4년간 소송을 벌이다 마지못해 합의를 해주고만 온라인게임 '미르의 전설'이 대표적 사례다. 제작사인 위메이드는 현지 법원이 판결을 지연한 채 합의만 종용,소송에 지친 끝에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합의에 응하고 말았다.

한국저작권위원회 관계자는 "해외 저작권 소송은 판결 기준이 둘쭉날쭉한 데다 현지 국가가 저작권을 침해한 쪽이다 보니 자국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일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해외 진출도 콘텐츠에 발목

대기업들도 해외 진출시 콘텐츠 수급 등의 문제로 고전하고 있다. 힐리오란 법인으로 2003년 미국에 진출한 SK텔레콤이 현지 차별화 포인트로 내세웠던 것은 무선인터넷 서비스였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악,영화,게임 등의 콘텐츠 가격이 높고 이를 수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사업 개시 5년 만에 회사를 매각했던 주요인 중 하나가 콘텐츠 수급 문제였다는 게 외부의 평가다.

미니홈피 서비스 싸이월드로 해외에 진출한 SK커뮤니케이션즈가 최근 미국,일본 등의 인력을 철수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각 나라에 맞게 서비스를 최적화하는 현지화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은 콘텐츠 장벽으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보진 않았지만 관련 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앞으로 성장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애플,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의 글로벌 기업들은 TV,PC,휴대폰 등을 모두 인터넷으로 연결해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제공하는 3스크린 플레이 시대를 맞아 앞다퉈 콘텐츠 서비스를 강화하고 있다.

삼성,LG는 올초 열린 미국 가전전시회인 CES에서 야후 등과 제휴를 맺고 인터넷 검색이 가능한 위젯 TV 등을 선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전반적인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 역량 측면에서는 글로벌업체에 비해 1~2년 뒤지고 있어 이에 대한 투자 확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통신업체의 한 관계자는 "하드웨어와 콘텐츠 · 소프트웨어의 구분은 물론 서비스 지역 구분도 사실상 무의미해지고 있다"며 "국내 통신업체나 제조사 모두 이 분야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시급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