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ㆍ기업 '키코 덫' 탈출했지만…
은행과 수출기업들이 '키코(KIKO)'의 망령에서 벗어나고 있다. 올 들어 환율이 하락(원화가치 상승)하면서 통화옵션 파생상품인 키코로 인한 기업들의 환차손이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줄고,은행들의 대손충당금 부담도 크게 낮아졌다.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올 들어 키코 계약으로 인한 손실과 관련,정부의 유동성 지원 프로그램을 받고 있는 중소기업의 숫자가 큰 폭으로 줄고 있다.

지난해 10월 패스트트랙을 통한 금융권의 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된 이후 두 달여 동안 413개에 달하는 키코 손실기업이 1조4000억원의 혜택을 받았으나 올 상반기 신규 지원업체는 201개사로 절반 수준에도 못미쳤다. 특히 환율이 1200원대의 하향 안정세를 지속한 5월과 6월 두 달간에는 지원업체 수가 31개사로 급감했다.

지난해 8월 키코사태가 불거진 이후 신규 계약이 자취를 감추고 환율 하락으로 옵션계약 기준 계약잔액도 급속도로 줄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8월 말 현재 79억달러에 달했던 키코 계약잔액이 지난해 말 37억달러로 줄어든 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10억달러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태산LCD의 키코 손실로 홍역을 치렀던 하나은행도 손실에 대비해 쌓은 충당금 중 2000억원 이상이 환입(손실추정액이 이익으로 바뀌는 것)되면서 분기 실적이 흑자로 돌아서는 등 키코의 덫에서 풀려나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까지 거액의 환차손을 입고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수출기업들도 환율 하락으로 손실이 절반 이하로 줄면서 정상궤도에 올라서고 있다. 일부 기업은 큰 폭의 평가이익까지 올리고 있다. 플랜트 설비 전문업체 성진지오텍은 이날 키코 등 파생상품 거래로 729억원 규모의 평가 및 거래이익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우리은행 파생금융팀 관계자는 "3월 초 1500원대까지 올랐던 환율이 5월 들어 1200원 중반대로 안정되면서 키코기업들의 결제 부담이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반면 수출기업들이 키코사태를 겪은 후유증으로 정상적인 환헤지마저 기피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지난 상반기 중 수출보험공사의 환변동보험(수출기업이 환율 변동으로 입는 손실을 보장해주는 보험)에 가입한 기업은 267개사 4204억원에 그쳤다. 이는 지난 한 해 가입액 14조5000억원(1253개사)에 비하면 현저하게 준 것이다.

수보 관계자는 "대부분의 중소 수출기업들은 환헤지를 하지 않고 있고,결제대금으로 받은 달러도 환전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도 키코와 같은 통화옵션 상품의 거래는 올 들어 자취를 감췄으며 일부 선물환 거래도 거의 수요가 사라졌다는 분위기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키코사태로 기업들이 환 파생상품의 위험을 절감하면서 투기적 수요는 완전히 사라졌지만 수출입 규모를 감안한 적정 수준의 환리스크 관리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심기 기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