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의 사용기간(2년) 제한 조항이 발효된 지 30일로 한 달이 되면서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조용한 실직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권이 후속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지만 타협의 가능성은 미지수다.

한나라당은 사용기간 제한 적용을 1년6개월간 유예하자는 당론을 접고 사실상 원점에서 재검토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신상진 제5정조위원장을 단장으로 하는 '노동관련법 TF(태스크포스)'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30일 오전 국회에서 비정규직법 관련 당정 회의를 갖고 법 시행에 따른 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지원책뿐만 아니라 법 개정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반면 민주당은 정부에 정규직 전환 지원금 1185억원의 조기 집행을 촉구하고 고용 안정과 처우 개선책 마련에 주력한다는 방침이어서 타협점 찾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하루 1000명 일터 떠나"

29일 노동부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16일까지 4839명이 일자리를 잃고 1901명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이 같은 수치는 사례 집계에 의한 것이어서 실제 숫자는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노동부는 하루에 약 1000명이 오로지 법 때문에 일터를 떠나거나 옮기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이익을 온전히 대변할 기구나 단체가 없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목소리는 거의 표출되지 않고 있다.

인천의 한 중소기업 사장 A씨는 "1일 이후에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비정규직 종업원을 변칙적으로 계속 고용해오다 지난주에야 해고 통보를 했다"며 "우리 같은 작은 기업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비정규직 실직자는 정부의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대란 입증' 논쟁을 불식하고 비정규직 문제의 근원적 해법을 찾을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1만개 사업체에 대한 비정규직 고용불안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한나라당의 해법에 반응은 "글쎄"

조원진 국회 환경노동위 한나라당 간사는 새로운 해법으로 △2년의 사용기간에 2년씩 두 번 갱신해 모두 6년(2+2+2)까지 고용 △정규직 의무 전환 비율 도입 △사업장 규모별 차등 적용 등을 제시했다.

이에 대해 어수봉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당초 정부가 2+2년(2년 사용에 2년 추가)을 추진하다가 '눈가리고 아웅'이란 지적을 받자 4년 연장으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수정했다"며 "한나라당이 이제와서 '2+2+2'방안을 내놓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규직 의무전환 비율 도입에 대해서도 노동시장에 악영향만 미쳐 일자리만 줄어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최재황 한국경총 본부장은 "시장경제를 채택하는 나라에서 정규직 전환 비율을 법으로 강제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정규직 전환 강제는 결국 기업에 부담만 안겨줘 고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한나라당의 사용기간 6년 연장 방안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해법은 임금 유연성"

전문가들은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으로 △직무급 임금체계 도입 △비정규직의 차별금지 강화 △정규직의 임금 유연성 등을 제시했다. 최영기 경기개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전 노동연구원장)은 "지금 시점에서 가장 효율적인 해법은 임금체계를 직무급으로 바꾸는 것"이라며 "정부가 직무에 따른 임금수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직무급을 표준화해 시장질서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어수봉 교수는 직무급 임금체계 실시와 함께 비정규직 차별금지 강화와 정규직의 임금 유연성을 제시했다. 어 교수는 "미국에선 기간제한과 사유제한이 없고 비정규직도 없지만 시장이 잘 돌아가고 있다"며 "이는 임금체계가 직무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어 교수는 또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 유연성만 확보돼도 비정규직 문제가 상당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경영학)는 "기간제 근로자에 대해서만 기간을 제한하고 차별을 금지하다 보니 기업의 도급근로자 사용이 급증하고 있다"며 "도급에 대한 차별금지도 함께 시행해야 비정규직 보호가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말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