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유명한 모던록 밴드 '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씨가 4개월의 남미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엘 핀 델문도-세상 끝에서 모든 게 시작되다》를 펴냈다. 달나라 빼곤 서울에서 가장 멀다는 남미 대륙의 13개 지역에서 마흔을 앞둔 그는 무엇을 품고 돌아왔을까.
그의 이야기는 담백하다. 15년차 음악인이라면 남미의 음악,남미의 예술 등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음악적 지식을 뽐내려 욕심부릴 법도 하지만 그는 순수한 여정에 초점을 맞췄다. "쉼표를 찾아서,태양의 나라로 광합성하러 떠난다"는 말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려는 저자의 노력이 눈에 띈다. 아르헨티나 목동 '가우초'들이 즐겨 먹는 '아사도',아르헨티나 사람이라면 아침마다 먹는 반달모양의 빵 '메디아 루나',10마리가 넘는 개를 동시에 산책시키는 직업을 가진 '산책지기',3시간 넘게 쉬지 않고 걸어 속살까지 들여다본 '이과수 폭포'….스쳐가는 여행자가 아닌 현지인들과 하나가 되려는 그의 시선이 다채롭다.
감각적인 가사를 쓰던 그의 필력과 사유의 깊이도 만만찮다. 파타고니아 트렐레우에서 군정시절 고문과 학대가 자행된 트렐레우 관광박물관을 바라보며 '왜 시대는 불행 없이 극복할 수 없는가,왜 행복은 희생 없이 얻을 수 없는가'라고 되묻는다. 또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라보카에서 만난 원색의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며 우리나라 부대찌개를 떠올린다. 다소 엉뚱한 발상이지만 배에서 쓰다 남은 자재와 페인트를 사용해 알록달록해졌다는 비화를 듣고 미군이 먹다 남긴 햄과 콩을 재활용해 만든 그 음식을 연상한 것.
글의 리듬에 힘을 실어주는 멜로디 역할은 그가 찍은 사진이 대신한다. 폼 나고 멋있게 찍으려 애쓰지 않았지만 꾸미지 않은 자유분방함이 그의 음악을 빼닮았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