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이 위법을 저질렀을 때 소속 법인이나 영업주를 함께 처벌토록 한 의료법 청소년보호법 등 6개 법률의 '양벌 규정'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30일 △의료법 91조1항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32조 △구 도로법 86조 △구 건설산업기본법 98조2항 △청소년보호법 54조 △사행행위규제 처벌법 31조 등 6개 법률의 양벌규정 조항에 대해 모두 위헌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이들 법률 조항은 직원이 위법을 저질렀을 때 해당 영업주나 법인도 과실이나 고의성 유무,가담 정도 등에 관계 없이 일률적으로 벌금형 등 처벌을 받도록 명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 따라 해당 조항은 소급해 효력을 잃게 되며 관련 법에 따라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는 재심 청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재판부는"양벌 규정은 다른 사람의 범죄 행위에 대해 (법인이나 영업주의) 책임 유무나 비난 가능성 등을 전혀 따지지 않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데도 형벌을 부과함으로써 '책임 없는 자에게 형벌을 부과할 수 없다'고 하는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밝혔다.

경기 화성 소재 A노인전문병원은 물리 치료사가 아닌 종업원 신모씨가 780회에 걸쳐 물리치료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수원지법으로부터 벌금형을 선고받자 위헌 제청을 했으며,강원 소재 B병원은 의료인이 아닌 건강관리과 직원이 19명에게 구강 검진 등 의료 행위를 한 혐의로 함께 벌금형에 처해지자 위헌 제청을 냈다.

인천 G퓨전선술집 점주 최모씨는 종업원이 새벽 시간대에 몰래 미성년자에게 소주 3병을 판매했다는 이유로 약식 기소되자 이에 반발해 위헌 제청을 했다.

또 과적 차량을 운행한 운전사 때문에 함께 처벌받은 화물회사나 사업등록증을 무단 대여한 직원 때문에 함께 처벌받은 건설회사도 위헌 제청을 했다. 또 케이블TV 보도채널 Y사는 소속 마케팅위원 백모씨가 뉴스채널 시청자 퀴즈를 운영하면서 유료 국번 전화를 안내,11억원의 정보 이용료를 챙기는 등 사행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함께 약식 기소됐었다.

한편 법무부는 지난해 양벌규정 개정작업에 들어갔다. 지난해 말 종업원의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개인영업주를 처벌하도록 한 보건범죄단속 특별조치법에 대한 위헌 결정이 내려진 게 계기가 됐다. 양벌규정이 명기된 392개 법률을 개정해 관리 · 감독 의무를 다한 기업주나 법인은 처벌을 면제해 주고,기업주의 과실이 있더라도 기존에 부과하던 징역형은 없애기로 했다. 이에 따라 177개 법률에 '고의 과실이 없는 경우 처벌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이 신설됐고,나머지는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