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선생할때 아이들 버린 몽당연필들
주워다 모은 게 한 필통 가득이다
상처 입고 망가지고
닮아질 대로 닳아진 키 작은 녀석들
글을 쓸 때마다 곱게 다듬어
볼펜 깍지에 끼워서 쓰곤한다
무슨 궁상이냐고 무슨 두시럭이냐고
번번이 핀잔을 해대는 아내
아내도 나에겐 하나의 몽달연필이다
많이 닳아지고 망가졌지만
아직은 쓸모가 남아있는 몽당연필이다
아내 눈에 나도 하나의
몽달연필쯤으로 보여졌으면 싶은 날이 있다
-나태주 '몽당연필' 전문-
볼펜 깍지에 몽당연필 끼워 쓰는 건 현실적 선택이었다.연필심이 다 닳아 없어지는 걸 봐야만했다.모든 게 부족했던 궁핍의 시대를 살아가려면.
볼펜 깍지와 몽당연필의 만남은 기적을 만들어낸다.볼펜은 볼펜대로,연필은 연필대로 각자의 정해진 수명 이상을 살게됐으니 말이다.아내는 쓸모가 많은 몽달연필.
시인도 아내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싶다지만,볼펜 깍지로 몽당연필을 지켜주는 존재가 이미 되어있지 않을까.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