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81년 출시된 '포니' 이후 28년간 현대·기아자동차는 두 회사 합쳐 총 100여종에 가까운 신차를 쏟아냈다. 이름도 다양하다. 듣자마자 이해할 수 있는 단순한 영어 단어가 있는 반면 어감은 좋은데 무슨 뜻인지를 도대체 알 수 없는 이름도 있다. 이들 차량의 이름들에서 자주 보이는 두 가지 '코드'가 있다. 바로 지명(地名), 그리고 '유럽'이다.

◆지명(地名)을 통한 '컨셉트' 구현

지명은 가장 자주 찾아볼 수 있는 '네이밍'이다. 특색 있는 지역의 명칭에서 이름을 따오는 건 새롭게 출시된 차량의 컨셉트를 알리기 위한 어렵지 않은 수단이다.

지난 2001년 티뷰론의 후속으로 출시된 현대차의 쿠페형 중형차 '투스카니(Tuscani)'는 이탈리아 중부 서해안의 대표적인 휴양지역의 이름이다. 고대 로마 문명의 기원지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아름다운 정경을 가장 간단히 즐기려면 지난 2003년 개봉한 로맨스 영화 '투스카니의 태양'을 보면 된다.

이전 모델인 '티뷰론(Tiburon)'은 스페인어로 '상어'를 뜻하지만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의 유명한 '부촌' 이름이기도 하다. 금문교를 건너 미국 최고의 포도주 산지인 나파밸리로 가는 길에 샌프란시스코 만에 접해 있는 동네다.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싼타페(Sante Fe)'는 미국 뉴멕시코의 주도 이름이다. 휴식과 레저를 상징하며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와 자유를 추구한다는 컨셉트다. 2000년 북미 시장과 한국 시장에서 동시에 출시됐다. 북미 시장 판매 확장의 '사명'을 띠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디자인 연구소가 개발했다. 2006년 풀체인지를 거쳐 최근 '싼타페 더 스타일'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등장했다.

SUV '투싼(Tucson)'은 출시 당시 TV광고를 통해 알려진 대로 태양 빛이 작열하는 미국 애리조나주의 관광명소다. 산으로 둘러싸인 높은 사막지대인 이곳의 주민들은 '걸핏하면' 한국인 관광객들에게 현대차 얘기를 한다는 후문이다. 대형 SUV '베라크루즈(Veracruz)'도 멕시코 중동부 카리브해의 항구도시 이름이다.

기아차의 SUV '쏘렌토'는 이탈리아 나폴리항에서 차로 1시간 반 거리에 있는 항구로 '세계 3대 미항'이라 불리기도 한다. '돌아와요 쏘렌토로(Torna A Surrlento)'라는 가곡으로도 유명하다. 미국 샌디에이고 근처에도 같은 이름의 지역이 있는데, 이곳은 첨단기술단지다. 지난 4월 최신형 '쏘렌토R'을 성공적으로 출시하며 기아 SUV의 대표적인 모델로 자리잡고 있다.

중형세단 '로체'는 '세계 5대 고봉' 중 하나인 히말라야 산맥의 로체봉(Lhotse·티벳어)에서 발음을 따왔다. '자신의 한계를 넘어 더 큰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차'를 뜻한다는 게 기아차의 설명이다.

대형 SUV 모하비(Mohave)는 '최고 기술을 갖춘 SUV의 최강자(Majesty Of Hightech Active Vehicle)'라는 말의 약자다. 또한 기아차의 주행성능 시험장이 위치해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사막 이름이기도 하다.

◆현대·기아차의 '유럽 사랑'

현대차의 소형차 '베르나(Verna)'의 어원은 이탈리아어다. '청춘' '열정'이라는 뜻을 지닌 파생어로, '엔트리급'인 이 차의 공략 대상이 첫 차를 장만하려는 20대들임을 감안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국민 준중형'이라 불리는 '아반떼(Avante)'는 '전진, 발전, 앞으로'라는 뜻의 스페인어다.

국산 중형 세단의 대표주자인 '쏘나타(Sonata)'는 고도의 연주기술이 요구되는, 강한 개성을 지닌 16세기 바로크음악의 4악장 형식 악곡을 뜻하는 이탈리아어다. 기아차의 준중형 '포르테(Forte)' 역시 음악용어로 연주 시 '빠르게'를 의미한다.

'새로운 개념의 유럽형 자동차'를 표방했던 '라비타(Lavita)'도 이탈리아어로 '풍요로운 삶(La Vita)'이라는 뜻이다.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국내 시장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비운의' 자동차다. 다만 이르면 내년께 이 차의 후속모델(개발명 FS)이 출시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다.

대형 세단 '에쿠스(Equus)'는 라틴어로 '개선장군의 말, 멋진 마차, 천마'를 의미하며, 영어로는 '월등한, 세계적으로 독특한 명품 자동차(Excellent, Quality, Unique, Universal, Supreme automotive)'의 약자라는 게 현대차의 설명이다.

기아차의 대형 세단 '오피러스(Opirus)'는 라틴어 'Ophir Rus'의 약자다. '사회의 오피니언 리더(Opinion Leader of Us)'를 의미한다. 준중형차 '쎄라토(Cerato)'는 그리스어로 '뿔'을 뜻한다.

신차 한 대를 출시하는 건 만만찮은 일이다. 막대한 투자비용과 개발기간이 투입된 자동차를 내놓는 데 이름을 '대충' 지을 리가 만무하다.

이처럼 자동차 출시업체의 '열망'을 담은 이름들이 지어지는 과정은 어떨까.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각 차량들은 개발단계에서는 NF, TG 등 프로젝트명으로 부르다가 신차의 출시 계획이 확정되면 여러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수 차례에 걸친 회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회사 내 직원들이나 고객, 딜러들을 상대로 공모를 하기도 하고, 전문 업체에 맡기는 경우도 있다"면서 "오래 전 업계에서는 지어진 이름을 들고 작명소나 역술인을 찾았던 적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한경닷컴 이진석 기자 gen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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