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내년부터 국제대회에서 착용이 금지된 최첨단 수영복이 어느 대회보다 큰 힘을 발휘하며 세계 신기록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은퇴한 '장거리 자유형의 황제' 그랜트 해켓(호주)이 "이번 대회에서는 세계 기록들이 많이 깨질 것이다.

새로운 최첨단 수영복 덕에 수영 선수들이 점점 더 빨리 헤엄치고 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고 예상했던 것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대회 경영 5일째인 지난달 31일(이하 한국시간) 7개의 세계 신기록이 추가되면서 모두 29개의 세계 신기록으로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수영 세계신기록 개수(25개)를 넘어섰다.

이어 1일에도 남자 계영 800m 등 여섯 종목에서 세계 기록이 깨지면서 이번 대회 세계 신기록은 총 35개로 늘었다.

대회가 3일 막을 내리는 점을 고려하면 신기록은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예선에서 18위로 결승에도 못 올랐던 파울 비더만(독일)은 아레나의 최첨단 전신 수영복을 입고 나와 지난달 27일 이번 대회 경영 경기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비더만은 2002년 이언 소프(호주)가 세운 종전 세계 기록(3분40초08)을 7년 만에 0.01초 단축한 3분40초07로 금메달을 땄고 이튿날 자유형 200m에서 1분42초00의 세계 신기록으로 레이스를 마치며 마이클 펠프스(1분43초22, 미국)를 제치고 대회 2관왕에 올랐다.

비더만이 베이징올림픽 수영 8관왕인 '수영 황제' 펠프스를 제치고 우승하자 펠프스 전담 코치 밥 바우먼은 "최첨단 수영복이 금지될 때까지 펠프스가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수 있다"며 노골적으로 수영복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펠프스조차 비더만에게 자유형 200m에서 금메달을 내준 뒤 "수영이 수영 그 자체로 돌아가는 내년에는 참 재밌을 것"이라며 실력으로 정당하게 겨뤄보자"고 첨단 수영복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만을 표시했다.

자유형 200m 결승에서 비더만은 100% 폴리우레탄 아레나 최첨단 수영복을, 펠프스는 지난해 출시된 폴리우레탄이 50% 이하 섞인 스피도의 레이저 레이서를 입었다.

수영복의 도움을 받은 선수들의 세계 신기록 행진은 대회 기간 내내 계속됐다.

역시 최첨단 수영복을 입은 10대 소녀 사라 요스트롬(16.스웨덴)은 여자 접영 100m 준결승에서 56초44에 레이스를 마쳐 지난 9년 동안 누구도 넘보지 못했던 잉헤 데 브뤼인(네덜란드)의 종전 최고 기록(56초61)을 0.17초 앞당겼다.

또 아레나 전신 수영복을 입은 세자르 시엘루 필류(브라질)는 '수영의 꽃'인 남자 자유형 100m에서 '마(魔)의 47초 벽'까지 무너뜨리며 46초91에 레이스를 끝내 세계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환이 자유형 400m 예선에서 탈락하자 AP통신은 "박태환이 최근 시장에서 가장 빠른 수영복이라고 여겨지는 제품이 아니라 옛 수영복을 입고 나와 그 대가를 치렀다"며 부진의 한 원인으로 수영복을 지목하기도 했다.

박태환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자유형 400m 금메달, 자유형 200m 은메달을 땄을 때 입었던 스피도의 레이저레이서(LZR Racer) 반신 수영복을 이번 대회에서도 착용했다.

최첨단 수영복이 본격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수영복 제조 업체인 스피도가 지난해 2월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함께 개발한 '레이저 레이서'를 내놓으면서다.

레이저 레이서는 봉제선이 없고 방수소재 직물을 사용해 기존 수영복과 비교하면 마찰이 20%가량 줄었다.

또 부력도 뛰어나 수영 속도가 빨리지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첨단 수영복이 지난해 초 등장한 이후 지난해에만 무려 108차례, 올해도 로마 세계대회 전까지 30여 차례나 세계 기록이 새로 작성되면서 '기술 도핑' 논란이 일었다.

급기야 지난 4월 알랭 베르나르(프랑스)가 수영 남자 자유형 100m에서 사상 처음으로 47초 벽을 무너뜨렸지만, 당시 입었던 아레나의 수영복 X-글라이드가 국제수영연맹(FINA)의 사용 승인을 받지 못해 세계 기록으로 공인받지 못했다.

이에 따라 최첨단 수영복 때문에 세계 신기록이 양산되고 신기록 가치가 땅에 추락했다고 판단한 FINA는 내년부터 최첨단 수영복을 전면 금지키로 로마 세계대회에서 결론 내렸다.

FINA는 내년 1월부터 수영복 재질을 직물로 한정해 폴리우레탄 최첨단 수영복을 퇴출했다.

또 수영복 모양도 남자는 허리에서 무릎 위, 여자는 어깨선을 넘거나 무릎 아래로 내려가면 안 되도록 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등장한 전신 수영복도 전면 금지된다.

이번 대회에 쏟아진 세계신기록이 수영복 덕택인지, 선수 기량 향상 때문인지는 최첨단 수영복이 퇴출당하는 내년에 명백해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기자 sungjin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