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시대를 앞서나가야 한다지만,앞서가기만 하고 뒷마무리에는 소홀한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가 놓친 것을 예술이 뒤따라가며 시대를 완성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기발한 예술이 겨울 눈바람에 급하게 피는 매화라면,우리 민속을 다룬 이번 시집은 가을에 늦게 피는 국화에 비유하고 싶어요. "

시인 유안진씨(68)의 열네 번째 시집 《알고(考)》(천년의시작)는 '민속시집'이다. 속담,옛이야기,전통놀이,민간요법 등 우리 민속이 구성지게 시로 흘러나왔다.

이번 시집에는 "30년 동안 연애하듯 민속을 연구했다"는 그의 내공이 서려 있다. 미국 유학 중 우리 민속에 관심을 가지게 된 그는 귀국하자마자 시골을 돌아다니며 어르신 2000여분을 만나 자료 수집을 했다. 당시에는 녹음기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라 어르신들의 말씀을 하나하나 받아적어 자료를 취합해야 했다.

유씨는 우리 민속을 잊고 사는 세태에 대해 "세월의 가치는 돈으로 살 수 없다"면서 "소중한 것과 소중하지 않은 것의 가치를 구분하지 못하고 앞만 보며 쫓아가는 몰지각한 민족이 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그의 아쉬움은 '손끝에도 느낌이 없는 흐린 흉터에서/ 이야기 속 세상이 피어나곤 하지/ 저 세상의 세 어른을 나들이로 모시는 흉터의 마법이지/ 좋았던 때는 왜 모두 옛날 속에 숨어버릴까'(<첫날밤의 Y담> 중)나 '위기에 즉각 대처하던 신능의 자가처방이/ 어째서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을까'(<생선접시 머리에 이고> 중)에서 잘 드러난다.

그에 따르면 민속은 창의적이고 풍부한 상징이자 생활의 지혜와 재치,깊은 사유다. '벌레먹은 이빨'로 치통을 앓는 아이에게 벌레를 잡아먹는 딱따구리 부리를 물리는 민간요법을 한갓 미신으로 치부하기엔 아깝다. 상징성에 재치가 묻어나 있다.

그렇다고 모든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나는 혼자서도 왜 2번인가?둘째인가?/ 왜 늘 대안이고 차선책이고 다음이어야 하는가?'(<최초의 페미니스트> 중)라며 여성을 하대하는 우리 민속을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민속은 시대에 맞게 변하면서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 새로운 민속이 생겨나는 생명력이 있다"면서 "우리 삶의 진실과 현재를 드러내는 게 민속의 힘"이라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