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 매니지먼트] (인물 탐구) 윤용로 기업은행장‥ 지점 여직원과 메신저 토론하는 '열린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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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맞으러 왔습니다" 지방 누비는 '현장소장'
지난 4월 중순,기업은행 동두천지점의 한 여직원이 기업은행 내부메신저를 통해 윤용로 행장에게 "행장님 계세요"라고 글을 보냈다. 윤 행장으로부터 "자리에 있습니다. 지점엔 별 일 없나요"라는 답이 왔다. 즉각 회신이 올 것이란 생각을 못했던 여직원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킨 뒤 윤 행장에게 "업무를 진행하는 데 개선해야 할 사안이 있습니다"라며 몇 가지 방안을 건의했다. 윤 행장은 여직원과 30분간 대화한 뒤 "좋은 아이디어 고맙습니다. 적극 반영하겠습니다"라고 메신저 토론을 끝냈다고 한다.
윤용로 기업은행장(54)은 은행 내에서 격의없는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윗사람 아랫사람을 구분하고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가 작년에 경기 양주지점을 찾은 적이 있다. 서울에서 그다지 먼 곳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많지 않은 곳이다. 역대 기업은행장 중에서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지점 직원들은 윤 행장에게 '북방한계선을 넘은 은행장'이란 칭호를 붙여줬다.
윤 행장은 열린 경영,현장 경영을 추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30년 동안 관료였습니다. 공무원은 아무래도 책상물림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민원인이 많다 보니 찾아오는 손님 만나기도 벅찰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장은 달라요. 예전과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고객이나 직원을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업이 안 되고 경영이 안 됩니다. "
윤 행장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다가 2007년 말 기업은행장에 발탁됐다.
취임 후 두 달여가 지나고나서부터 현장을 찾아다녔다. 경기도 광주를 방문해 20여개 중소기업체 사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른바 '타운미팅'이다. 중소기업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장소도 주민자치센터를 빌렸다. 윤 행장은 주로 얘기를 들었다. 그는 "매를 맞기 위해 왔습니다"라며 정부와 은행들은 중소기업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왜 중소기업은 어려운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해 달라고 매번 요청했다. 중소기업인들은 편하게 얘기했고 고마워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장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후 1년반이 안되는 기간 동안 전국 방방곡곡 안 다닌 곳이 없다. 아산 전주 화성 충주 구미 목포 광주 울산 부산 창원 오창….윤 행장은 지금까지 중소기업인 현장간담회만 24차례 열었다. 참여한 기업체 수만도 1200여개에 이른다. 간담회 한 번에 평균 50명의 중소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동거리만도 5000㎞에 이른다. 서울과 부산을 11차례 오고 간 셈이다.
윤 행장은 이런 자리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중소기업인들은 대부분 자금 부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고 자금 지원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만든 첫 작품이 지난해 5월 나온 '중소기업 희망통장'이다.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 대출재원을 마련하는 예 · 적금 상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호로 가입하면서 공공기관 지자체 대기업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이 상품의 수신잔고는 현재 4조2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서 모은 돈은 중소기업 대출로 나간다.
지난해 중반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중소기업의 고통이 심해지자 기업은행이 5000억원을 특별대출해 준 것,중소기업 가업승계 지원 서비스를 시작한 것 등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중소기업 근로자 서민 등을 타깃으로 한 금융상품이 많이 나온 것도 그 배경엔 현장이 있었다. '서민섬김통장'이 대표적이다. 가입금액 3000만원까지는 높은 금리를 지급하지만 그 이상은 오히려 낮은 금리를 주는 역발상 상품이다. "부유층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금융상품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 행장은 행내에서 '아이스크림 번개 미팅'을 자주 갖는다. 오후 5시께 본부나 부서 단위별로 직원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또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비상경영회의에 참석하는 대상을 임원으로 제한하지 않고 부서장 · 팀장까지로 확대했다. 각자 맡은 곳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지 말고 은행 전체를 생각하며 부서 간 벽을 허물라는 취지다.
윤 행장은 직원들과 회식할 때 소주폭탄을 3~4잔 정도 마신다. 물론 더 마실 수 있지만 더 할 경우 직원들의 얘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자제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선배로서 직원들에게 매사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자주 조언한다. 그런 차원에서 일본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을 자주 인용한다. 고노스케 회장은 몸이 약한 것,가난하게 태어난 것,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활동하고 공부하고 일했다며 이 3가지를 오히려 '복(福)'으로 칭했다. 윤 행장도 전기대학입시에서 떨어져 후기모집대학에 들어간 것,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등을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가 요즘 붙잡고 있는 책은 '브레이크스루 컴퍼니'다. 작은 기업에서 출발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일류가 된 기업들을 분석한 책이다. 지난해 '히든 챔피언'에 이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지침서로 활용하기 위해 탐독하고 있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말에 우면산을 자주 찾고,가끔 부인(이영순씨)과 함께 집에서 4㎞ 거리인 반포까지 걸어가 영화를 보기도 한다. 주말 등산과 영화 관람은 머리를 맑게 해 준다고 한다.
윤 행장은 요즘 기업은행을 지속가능한 금융회사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고객기반 확충이 필수이며 직원들이 좀 더 뛰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
윤용로 기업은행장(54)은 은행 내에서 격의없는 최고경영자(CEO)로 통한다. 윗사람 아랫사람을 구분하고 사람을 가려서 만난다면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문을 활짝 열어 놓아야만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가 작년에 경기 양주지점을 찾은 적이 있다. 서울에서 그다지 먼 곳은 아니지만 기업들이 많지 않은 곳이다. 역대 기업은행장 중에서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다. 지점 직원들은 윤 행장에게 '북방한계선을 넘은 은행장'이란 칭호를 붙여줬다.
윤 행장은 열린 경영,현장 경영을 추구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제가 30년 동안 관료였습니다. 공무원은 아무래도 책상물림이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민원인이 많다 보니 찾아오는 손님 만나기도 벅찰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은행장은 달라요. 예전과는 크게 바뀌었습니다. 고객이나 직원을 직접 찾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업이 안 되고 경영이 안 됩니다. "
윤 행장은 금융감독위원회(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내다가 2007년 말 기업은행장에 발탁됐다.
취임 후 두 달여가 지나고나서부터 현장을 찾아다녔다. 경기도 광주를 방문해 20여개 중소기업체 사장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른바 '타운미팅'이다. 중소기업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장소도 주민자치센터를 빌렸다. 윤 행장은 주로 얘기를 들었다. 그는 "매를 맞기 위해 왔습니다"라며 정부와 은행들은 중소기업 지원을 한다고 하는데 왜 중소기업은 어려운지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말해 달라고 매번 요청했다. 중소기업인들은 편하게 얘기했고 고마워했다. 돈줄을 쥐고 있는 은행장이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도 이례적인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후 1년반이 안되는 기간 동안 전국 방방곡곡 안 다닌 곳이 없다. 아산 전주 화성 충주 구미 목포 광주 울산 부산 창원 오창….윤 행장은 지금까지 중소기업인 현장간담회만 24차례 열었다. 참여한 기업체 수만도 1200여개에 이른다. 간담회 한 번에 평균 50명의 중소기업 대표들이 참석했다. 이동거리만도 5000㎞에 이른다. 서울과 부산을 11차례 오고 간 셈이다.
윤 행장은 이런 자리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중소기업인들은 대부분 자금 부족을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꼽았고 자금 지원을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래서 만든 첫 작품이 지난해 5월 나온 '중소기업 희망통장'이다. 고객에게 우대금리를 제공함으로써 중소기업 대출재원을 마련하는 예 · 적금 상품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호로 가입하면서 공공기관 지자체 대기업들의 참여가 줄을 이었다. 이 상품의 수신잔고는 현재 4조2000억원에 이른다. 여기서 모은 돈은 중소기업 대출로 나간다.
지난해 중반 국제유가가 치솟으면서 중소기업의 고통이 심해지자 기업은행이 5000억원을 특별대출해 준 것,중소기업 가업승계 지원 서비스를 시작한 것 등도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중소기업 근로자 서민 등을 타깃으로 한 금융상품이 많이 나온 것도 그 배경엔 현장이 있었다. '서민섬김통장'이 대표적이다. 가입금액 3000만원까지는 높은 금리를 지급하지만 그 이상은 오히려 낮은 금리를 주는 역발상 상품이다. "부유층이 아닌 사람들을 위한 금융상품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윤 행장은 행내에서 '아이스크림 번개 미팅'을 자주 갖는다. 오후 5시께 본부나 부서 단위별로 직원들과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또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한 비상경영회의에 참석하는 대상을 임원으로 제한하지 않고 부서장 · 팀장까지로 확대했다. 각자 맡은 곳의 이해관계만을 생각하지 말고 은행 전체를 생각하며 부서 간 벽을 허물라는 취지다.
윤 행장은 직원들과 회식할 때 소주폭탄을 3~4잔 정도 마신다. 물론 더 마실 수 있지만 더 할 경우 직원들의 얘기에 집중하기 힘들어서 자제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생의 선배로서 직원들에게 매사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자주 조언한다. 그런 차원에서 일본 파나소닉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을 자주 인용한다. 고노스케 회장은 몸이 약한 것,가난하게 태어난 것,배우지 못한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열심히 활동하고 공부하고 일했다며 이 3가지를 오히려 '복(福)'으로 칭했다. 윤 행장도 전기대학입시에서 떨어져 후기모집대학에 들어간 것,넉넉하지 않은 가정환경 등을 비관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했다고 스스로 말한다.
그가 요즘 붙잡고 있는 책은 '브레이크스루 컴퍼니'다. 작은 기업에서 출발해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일류가 된 기업들을 분석한 책이다. 지난해 '히든 챔피언'에 이어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지침서로 활용하기 위해 탐독하고 있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말에 우면산을 자주 찾고,가끔 부인(이영순씨)과 함께 집에서 4㎞ 거리인 반포까지 걸어가 영화를 보기도 한다. 주말 등산과 영화 관람은 머리를 맑게 해 준다고 한다.
윤 행장은 요즘 기업은행을 지속가능한 금융회사로 만들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고객기반 확충이 필수이며 직원들이 좀 더 뛰는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박준동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