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지난 4~5년 사이다. 삼성과 LG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국제담합 규제의 덫에 걸려 미국 법무부에 낸 과징금은 무려 12억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과징금과는 별도로 미국에서 형사범으로 수감생활을 했고,또 할 수도 있는 대기업 고위 임직원들은 전직 부사장을 포함 30명을 웃돌 수 있다.

미국에서는 형사소송과 함께 병행하는 집단 민사소송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경쟁법은 자국의 소비자와 기업이 카르텔로 본 피해액의 총 세 배까지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국제담합 제재가 한국 기업들에 주는 막대한 피해는 개별적 사건 대응의 차원을 넘어 능동적인 패러다임의 변화가 절실함을 웅변한다.

더욱이 미 경쟁당국의 제재 강도는 앞으로 수년간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유세에서 부시 전 행정부의'나약한' 반독점법 규제를 맹렬히 비난했다. 당선 후 그가 임명한 법무부 경쟁담당 국장인 크리스틴 바니는 정부의 적극적인 반독점법 단속이야말로 미국이 경기 침체를 벗어나는 데 촉진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만이 아니다. 담합규제는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과 같이 급성장하는 국가의 경쟁당국들이 앞다퉈 주도하는 추세다. 지난해 말 EU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유리제조업체 생고뱅에 담합을 이유로 11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과징금을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지금까지 미 법무부가 한 회사에 내린 최고 과징금인 5억달러 기록을 두 배 이상 초과하는 금액이다. 미국과 유럽은 최근 들어 서로 보란듯 누가 더 큰 규모의 과징금과 국제담합 소탕에 성공하는지 경쟁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정도다.

담합 조사가 발표난 후 대응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는 한국 기업들의 인식은 상당한 낭패를 초래할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일수록 한번쯤은 카르텔의 홍역을 치를 것이라는 전제 하에 대응해야 한다. 예방,발견,신속대응이라는 3박자가 필요하다.

예방에는 임직원을 위한 카르텔 준수 교육이 필수다. 교육을 효과적으로 실시하는 한국 기업들이 현재 터무니없이 적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교육 과정이 있더라도 형식적이어서 안타깝다. 교육이 임직원들의 직무활동에 얼마나 영향을 끼치는지 체계적인 데이터 측정이 주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마치 예방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동일한 백신주사를 해마다 환자에게 투입하는 것과 흡사하다.

카르텔 법규와 반대되는 일이 벌어졌을 경우를 대비해 조기 발견,진단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돼야 한다. 카르텔과 관련한 행동을 신속히 발견할 수 있도록 경쟁업체와 오고 가는 통신 내용을 정기적으로 감사한다거나,직원들이 마음놓고 활발한 제보 활동을 하도록 24시간 핫라인을 운영하는 것 등이다. 조기 발견에 기여한 임직원들에게는 인사평가에 반영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러나 문제가 한번 감지되면 심층분석한 뒤 경쟁당국에 자진신고함으로써 관련 처벌을 사면받을 수 있을지 신속하게 검토해야 한다. 미 법무부가 1990년대 초 완성한 카르텔 사면제도(leniency program)는 가장 먼저 카르텔 행위를 자진신고하는 기업에 100% 사면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 제도는 EU 회원국과 캐나다 호주 일본 한국 멕시코 브라질이 도입했다. 머지않아 중국과 인도까지 채택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 법무부에는 비공식적으로 한 달 평균 3~5건의 국제카르텔 사면신청서가 접수되고 있다. 어떤 사건들은 제1순위와 2순위 신고기업들이 단 몇 시간 차이로 사면신청을 해온 적도 있다. 촌각을 다퉈야 하는 국제 사면제도의 효과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해외 유수의 다국적 기업들을 대리해 본 필자로서는 이런 대응 방안이 너무나 당연한 기업 정책이다.

앤드류 리 <변호사ㆍ美화이트&케이스 워싱턴사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