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부부가 대여섯살쯤 돼보이는 딸과 함께 들어온다. 아이는 마루에 올라 다듬이돌을 만지더니 내려와 부엌 앞 절구를 찧고 맷돌을 돌려본 다음 부엌에 들어가 가마솥이 걸린 아궁이를 들여다본다. 아이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보고 묻고 부모는 아는 대로 대답한다.

서울 삼청동 국립어린이박물관 전시실의 한 정경이다. 4일 현판식을 갖고 정식 출범한 국립어린이박물관의 개관전은 '심청이야기 속으로'.심청전의 내용을 중심으로 옛생활과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심청의 집에서 인당수를 거쳐 바닷속 용궁과 궁궐로 이어진다.

인당수에 띄워진 배(舟)에 오르면 바닷물이 출렁이는 듯하고,미끄럼틀을 통해 내려오다 보면 물로 뛰어드는 것같다. 용궁에서 연꽃을 타고 나와 궁궐에 가면 왕비 옷을 입고 옥좌에 앉아볼 수도 있다. 맹인잔치까지 둘러보고 나면 관람소감을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는 공방이 나온다.

어린이박물관은 이처럼 전시품이 아닌 사람 중심으로 꾸며진다. 효시는 1899년 문 연 미국 뉴욕 브루클린 어린이박물관.아이들은 뭐든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며(존 듀이) 따라서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한 환경 제공이 중요하다(마리아 몬테소리)는 교육이론을 축으로 생겨났다.

1960년대부터 뭐든 손으로 만지고 움직이는 직접 체험을 통해 사물을 파악하도록 하는'핸즈 온(hands on)'개념이 일반화됐고,90년대 이후엔 어린이들이 마음껏 즐기면서 상상력과 호기심을 키우는 한편 타인을 존중하고 다른 세계의 차이를 이해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둔다.

국내에선 95년 삼성어린이박물관이 설립된 뒤 주로 국공립 박물관에서 운영해왔다. 국립어린이박물관(관장 박호원) 또한 2003년 이래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담당해 오다 이번에 정식 직제를 갖춘 독립기구로 출범한 것이다.

어린이박물관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배움터인 동시에 어른과 아이의 소통공간이다. 아동의 눈높이에 맞춰진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작은 것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히 여겼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서 삶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게 되는 까닭이다. 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동안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건 물론 다문화시대를 살아갈 폭넓은 마음,사물에 대한 탐구심과 창의성을 키울 다양한 전시와 정교한 교육프로그램 개발은 남은 과제다.

박성희 수석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