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정호승 '또 기다리는 편지' 전문


낙조(落照)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뒷모습을 포착했다. 어찌 손 써볼 틈도 없이,앞서 달려나가 막아볼 도리도 없이 저만치 사라지는 그녀.날 저물며 어렴풋이 사라지는 섬에서 또다시 그녀를 떠올리지만,어둠에 기댄 채 울음보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첫눈이 돼 재회할 수 있다며 희망의 불씨를 놓지 않는 당신.가슴 시린 짝사랑은 결코 녹슬지 않는다.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헌 필름을 꺼내들었듯이 추억의 눈 위에 지는 해를 올려놓으면 아슴아슴한 옛 애인이 나타나지 않을까.

남궁 덕 문화부장 nkdu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