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GS건설 챔버오케스트라‥건설현장의 사람들 '베토벤 바이러스'에 감염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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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기 한번 안만져본 왕초보 80여명, 피나는 연습끝에 창단연주회 '감격'
정말 우연이었다. 같은 팀 문라경 과장이 첼로를 배우고 있고 최윤석 사원이 동네에서 피아노를 배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접해온 필자는 "그럼 피아노 트리오를 만들어도 되겠다"라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다. 하지만 농담으로 끝나지 않았다. 피아노 트리오 이야기는 급속도로 퍼지더니 마침내 회사 지원을 받는 공식 동아리로 등록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최윤석 사원이 동아리 설립 총대를 멨다. 이왕 하는 김에 챔버 오케스트라 정도는 구성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이름도 'GS 챔버오케스트라'로 짓고 본격적으로 나섰다.
"GS건설에서 일하는 임직원이 얼마나 많은데 악기에 관심있는 사람 10~20명이 없겠어"라는 심정으로 시작했지만 솔직히 걱정도 됐다. 용두사미로 끝나면 어쩌나 하고.그런데 동아리 가입원서가 밀려들면서 80명이 넘는 단원을 갖춘 제법 큰 규모의 오케스트라가 탄생했다. GS 챔버오케스트라는 2008년 1월 이렇게 우연처럼 만들어졌다.
야심차게 시작했으나 오케스트라를 운영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초보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었다. 초보도 그냥 초보가 아니라 악기를 한 번도 잡아보지 못한 완전 초보가 대부분이었다. 인기리에 종영한 TV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초기 모습은 그나마 양반이었다.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으니 연주회를 해야 할 터인데 눈앞이 깜깜했다. 물론 신세한탄만 할 수는 없었다. 호주머니를 털어 악기를 구입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30분씩 개인레슨을 받았다. 일요일에 모여 전체 연습도 했다. 쉽지 않은 과정이었지만 GS건설 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뭔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에 즐겁고 뜻깊은 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케스트라 이름이 사내외로 알려지게 됐고 찬조출연 요청이 들어왔다. 첫 공연은 GS건설 노동조합 창립기념 행사.학창 시절 연주 경험이 있는 이른바 '선수들'을 주축으로 익숙한 곡들을 연주했다. 어려운 곡도 아니면서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지만 동고동락한 임직원들은 많은 격려와 찬사를 보내줬다. 조촐한 공연을 마친 우리 오케스트라는 강촌리조트 야외 공연과 사내 로비에서 성사된 '게릴라 콘서트' 등을 통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올해부터 운영진을 맡은 젊은 사원들은 '대형 사고'를 기획했다. 이름하여 'GS 챔버오케스트라 창단연주회'.회사와 남촌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이른 봄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한 달여 연습끝에 연주회가 막을 올렸다. 관객과 교감하며 편안하게 연주하겠다는 다짐은 어디로 갔을까. 악보에 빼곡히 적혀있는 코멘트는 눈에 들어오지 않고 연주하는 손은 굳어져갔다. 마침내 마지막 곡의 마지막 음이 사라지자 아쉬움 속에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정적이 공연장을 감싸려는 찰라 무대 끝에서부터 서서히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박수소리는 함성소리와 어울리며 공연장을 가득 울렸다. 단원들의 얼굴은 혼신을 다해 연주한 증거로 붉게 상기돼 있었다. 최선을 다해 연주해준 단원들에 고마움의 표시로 엄지손가락을 살며시 들었다.
관객들에게 답례하기 위해 뒤로 돌아섰을 때 필자는 할 말을 잃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감동과 찬사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우리는 누구할 것 없이 감격에 젖었고 우리 모두가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이었다.
/소명섭 GS 챔버오케스트라 지휘자(플랜트 기본설계팀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