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en Growth Korea] '오일쇼크' 때 농기구 버리고 풍력발전 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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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앞선 베스타스
<제2부> 그린에너지 세계대전 - ①녹색패권을 잡아라
<제2부> 그린에너지 세계대전 - ①녹색패권을 잡아라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공항 인근 으어슨(Oresund) 바다. 착륙 준비로 고도를 낮춘 비행기 창문 밖으로 바다 한복판에 우뚝 솟은 20여기의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이방인을 맞는다. '현대판 풍차의 나라' 덴마크를 알리는 이정표다.
덴마크는 신재생 에너지인 풍력발전의 본고장이다. 전 세계 풍력발전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다. 바다에 세우는 고난도의 해상 풍력발전기 시장 점유율은 90%에 이른다.
덴마크의 풍력산업을 이끄는 간판 기업은 베스타스(Vestas)다. 지구촌 곳곳에 세워진 풍력발전기의 3분의 1에는 베스타스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글로벌 녹색 패권'을 잡은 대표적 회사다.
◆멀리 보고 앞서갔다
코펜하겐에서 400㎞ 떨어진 덴마크 서쪽 유틀란트 반도의 바데 지방.베스타스의 11개 공장 가운데 하나인 타워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공장 안에 들어서니 굉음이 요란하다. 한쪽에선 지름 2~3m에 달하는 철제 원통을 잇는 용접작업이 한창이다. 크누 한센 타워사업부 사장이 커다란 링 모양의 부품 하나를 가리키며 "원통과 원통 사이의 접합 부품인 플랜지(flange)"라며 "한국 업체로부터 공급받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력이 좋아 5년간 장기계약을 맺었다"는 설명이다. 녹색성장 테마주로 코스닥 시장에서도 화제가 됐던 태웅의 주력 제품이다.
베스타스는 풍력산업에 관한 한,말 그대로 '독보적인' 기업이다. 그동안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지난해 기준 세계 풍력발전 시장 점유율은 19.8%.미국의 GE윈드가 18.6%로 바짝 뒤를 쫓고 있지만 대부분 내수 위주다. 전 세계 70개국에 수출하고 있는 베스타스와는 비교할 수 없다. 시장 점유율 12.0%로 세계 3위 기업인 스페인 가메사(GAMESA)도 베스타스와 합작해 설립했다가 독립한 업체다. 뿌리는 베스타스다.
베스타스는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별 볼일 없던 회사였다. 농기구와 선박부품 등을 만들던 중소기업에 불과했다. 기존 사업부문의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생존마저 위협받았다.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때 돌파구로 찾은 게 풍력발전이다. 타이밍이 좋았다. 오일 쇼크로 덴마크 경제가 휘청거렸다. 당시 덴마크의 에너지 수입률은 99%.신재생 에너지를 육성하기 위해 덴마크 정부는 각종 지원책을 실시했다. 풍력발전 사업자에게 7~9년간 전기요금 구매가의 30%를 프리미엄으로 보장해주는 방식으로 초기 설비투자에 대한 부담을 줄여줬다.
이에 힘입어 베스타스는 빠르게 풍력발전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1979년 30㎾ 터빈 생산에 성공했다. 1980년엔 대량생산체제를 갖췄다. 1년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풍력발전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베스타스는 순식간에 세계 시장을 휘어잡았다. 30년 전 앞을 내다본 과감한 변신과 투자가 '녹색 패권'을 잡게 한 것이다.
◆선택과 집중,연구개발로 승부했다
고비가 없었던 건 아니다. 첫 고비는 1986년.주력 시장인 캘리포니아주가 풍력 관련 법령을 변경하면서 수출길이 막혀버렸다. 생산 제품의 100%를 수출했던 베스타스로서는 엄청난 타격이었다. "회사가 재정난에 휘청거려 파산 위기에 몰렸을 정도"(한센 사장)였다. 이때 베스타스가 택한 것은 풍력발전에만 집중하는 정공법이었다. 철강 부문 등 여러 사업을 정리하고 오직 풍력발전 기술개발에만 매달렸다.
성과는 4년 만에 나타났다. 1990년 핵심 부품인 블레이드(blade · 날개)의 새 디자인을 개발하면서 수출길이 다시 뚫린 것.캘리포니아주는 물론 영국 인도 등에서 1000여대의 풍력발전기를 주문했다. 말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후 베스타스가 걸어온 길은 항상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1994년엔 세계 최초로 600㎾급 풍력발전 시스템을 개발했다. 이듬해 역시 세계 최초로 해상 풍력단지 개발에 성공했다. 중국 시장에도 진출했다.
현재 세계 풍력발전 시스템의 주력 제품 중 하나인 2㎿급은 베스타스가 10년 전 개발한 것이다. 2000년에는 스페인 가메사로부터 1800대의 풍력발전기를 수주했다. 단일 거래로는 가장 큰 규모다.
베스타스가 위기를 넘기고 세계 시장을 제패할 수 있었던 비결은 연구개발(R&D)투자다. 작년 말 현재 베스타스의 R&D 인력은 1345명에 달한다. 전체 인력의 6%나 된다. "베스타스를 제외한 전 세계 나머지 풍력발전 기업의 R&D 인력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게 한센 사장의 설명이다. 이들은 계속해서 신상품을 내놓으면서 베스타스가 풍력발전의 최강자 자리를 굳히는 동력이 되고 있다.
베스타스가 이끄는 풍력산업은 덴마크 경제를 떠받치는 기둥이기도 하다. 덴마크 전체 수출물량의 8%는 풍력발전기다. 지난해 풍력발전 수출 규모는 전년 대비 20%나 성장했다. 250만개 일자리 중 풍력산업에서 창출되는 것만 4만개에 이른다. 덴마크 안에 세워진 풍력발전기도 5500기에 달한다. 전체 에너지원의 20%를 담당한다. 덴마크 정부는 2012년까지 이 비율을 30%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한국 기업에도 기회
베스타스는 한국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풍력발전 터빈의 주요 부품인 플랜지의 60%,회전축(shaft)의 50%를 한국 중소업체로부터 구입하고 있다. 포스코와도 철강 수입을 협의하고 있다. 베스타스는 연간 100만t 규모의 철강을 구입하고 있다.
최근엔 지식경제부와 한국 투자와 관련된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전남 신안 주변에 해상 풍력발전기를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한센 사장은 "한국의 서남해안과 동해안 일대는 해상 풍력발전에 적합한 기후 요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다음 달 9일에는 타워,블레이드,발전기 및 기어박스 등을 합친 나셀(nacelle) 등의 부품업체를 추가로 선정하기 위해 한국 업체들만을 초청한 구매행사를 베스타스 바데 공장에서 연다. 베스타스가 특정 국가의 업체들만을 대상으로 구매행사를 갖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KOTRA가 주관하는 이 행사엔 동국S&C 케이피에프 등 국내 20여개 업체들이 참가해 70여명의 베스타스 부문별 구매담당자들과 상담을 가질 예정이다.
바데(덴마크)=이정선 기자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