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0여개월 정도 연수를 받으며 지낸 적이 있다. 연수 중 친하게 지내던 일본인 동기생의 집에 초대받았다. 당시 나나 그 친구나 모두 결혼 전이라 그 날 방문한 집은 후쿠오카에 있는 동기생의 부모님 댁이었다.

차에서 내려 현관 입구에 들어서서 신발을 벗으려던 차에 종종걸음으로 뛰어나와 아들 친구에게 깍듯이 무릎 꿇고 인사하는 동기생의 부모님을 보고 기겁을 했다. 한국 예의를 기준으로 할 때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현관 바닥에 붙을 정도로 자세를 낮추는 것밖에 없었고,신발을 벗다 말고 엉거주춤하게 엎드린 나의 희한한 자세에 동기생이나 그 부모님도 같이 당황했었다. 식사를 하면서도 많이 놀랐다. 그저 중 · 상류층의 깔끔한 집이었던 것처럼 음식도 그리 화려한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손 닦는 물수건의 온도에서부터 음식이 하나 나올 때마다 껍질 담는 그릇,생선 가시나 뼈 담는 그릇이 늘 같이 따라 나오고,우리처럼 여러 사람이 같이 먹는 음식 없이 각자에게 음식이 배정되어 있음에도 손님 취향을 배려하여 덜어 먹을 수 있도록 작은 국자나 주걱을 비치해 두고,마지막에는 쓰고 난 이쑤시개의 처리에 이르기까지,세심하기 그지없는 접대에 감탄했다. 이건 마치 식사 접대 시스템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아버지 앞에서 버젓이 식후 끽연을 즐기는 친구의 모습.생긴 것도,겉으로 보이는 사는 모습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꼈던 나라의 첫 가정 방문에서 받은 문화 충격이었다.

이날의 식사 초대와 더불어 당시 일본 백화점 직원들의 고객 응대의 세심함이나 일본 위생기기 회사와의 프로젝트 진행 때 그들이 보여 준 지나칠 정도(우리 기준으로 보았을 때)로 꼼꼼한 세부 실행 계획 등은 문화의 차이만큼이나 디테일(세세한 부분)의 차이에서 나를 놀라게 했던 사건이었고,그 당시에 느꼈던 완성도의 차이는 나름 일본과의 격차를 줄이리라던 야심에 자괴감마저 들게 만들었었다.

이때의 경험 탓인지 나는 요즘도 주변에서 통 큰 척하는 사람들을 몹시 경계한다. 남자라는 단어와 굵다는 표현을 즐겨 쓰며,디테일한 것과 쫀쫀한 것을 거의 동일시하는 그들의 특성상 어떤 일을 해도 계획적이지 않으며,그래서 실패하더라도 이 대승적 차원의 인간들은 별 책임감을 느끼지도 않는다. 매끈하게 끝마무리하는 적이 없다.

우리 직원들에게 가끔 물어보는 질문이다. 90점과 100점의 차이는 어느 정도일까? 10점이나 10% 정도의 차이일까. 학교 다닐 때 시험 공부를 해 보면 100점을 목표로 할 때와 90점을 목표로 할 때의 공부의 양이나 깊이는 천지 차이다. 100점은 단 하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단 하나도 틀리지 않으려면 90점을 목표로 할 때보다 최소 2배 이상은 더 공부해야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점수 차이보다 내재되어 있는 잠재력의 차이는 차원이 다르다. 디테일의 차이란 이런 것이다.

박종욱 로얄&컴퍼니(옛로얄TOTO)대표 jwpark@iroyal.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