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에 들어간 이후 3년 동안 제대로 잠을 자본 기억이 없습니다. 모두가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지상과제에 매달려 매일 밤을 지새야 할 정도였습니다. "

1998년 IMF 외환위기 당시 '청와대의 입'인 공보수석으로 근무한 박준영 지사가 10여년 만에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모든 게 불확실했어요. 의사 결정을 한 뒤에도 맞는 건지 틀린 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지요. " 책임감은 한없이 무거운데 옳은 길인지 두려웠다는 것.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삶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오전 7시반에 보고하러 올라가면 수면 부족으로 계속 하품하면서 손을 떠는 장면을 수시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때는 누가 1000만달러만 투자한다고 해도 대통령이 직접 찾아가 만날 정도로 상황이 다급했습니다. " IMF를 겪으면서 그는 '대통령도 브랜드'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2000년 독일에서 만난 요하네스 라우 대통령은 '외환위기 때 일본과 미국 유럽이 한국에서 돈을 빼갔지만 나는 김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돈을 빼지 말고 오히려 더 투자하라고 지시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김 대통령의 국제적 브랜드 덕분에 가능한 얘기라는 것.

1981~1983년 기간 중 대우그룹에서 근무한 적도 있는 박 지사는 부도 직전에 몰린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우그룹 해체의 여러 악역을 맡은 일이 가장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