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미국의 대공황기,전설적인 은행강도 존 딜린저(조니 뎁)는 13개월간 11번의 은행털이와 2번의 탈옥을 감행한 '공공의 적'.그를 번번이 놓친 FBI는 일급 수사관 멜빈 퍼비스(크리스찬 베일)를 영입해 대대적인 검거 작전에 나선다.

마이클 만 감독의 '퍼블릭 에너미'는 은행강도와 수사관의 대결을 품격 높게 그린 할리우드 범죄영화다. 수사관과 범죄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비슷한 비중으로 다룬 구성은 여느 범죄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수사관보다 범죄자에게 따스한 눈길을 보내는 설정은 드물다. 존은 당당하고 인간적인 '시민의 영웅'인 반면 멜빈은 유능하지만 온기 없는 냉혈한으로 그려진다. 존은 시민들의 돈을 빼앗지 않는다. 인질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며 여성 인질에게는 깍듯한 매너로 대한다. 동료들과의 신의도 저버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마리안 코티아르)에게는 자신이 수배 중인 은행강도라고 솔직하게 밝히며 구애한다.

존의 이런 면모는 멜빈 수사팀과의 총격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존이 쏜 총에 형사가 쓰러지는 장면은 눈에 띄지 않는다. 형사들이 죽는다면,그것은 존의 부하들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멜빈이 달아나던 강도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차갑게 그려진다. 피투성이가 된 강도는 멜빈을 향해 "넌 지옥에 갈 거야"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다. 멜빈의 현재와 미래를 암시하는 복선이다. 범죄자를 충분히 생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멜빈이 등 뒤에서 총을 쏘는 모습은 결코 정의롭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만 감독이 두 주인공을 이처럼 대조적으로 묘사한 이유는 자명하다. 진정한 '공공의 적'이 누구인지 관객들에게 반문하는 것이다. 15세 이상.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