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토지박물관(관장 심광주)은 11일 항일의병운동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이자 대한제국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군대를 해산하기 직전인 1907년 7월부터 1909년 6월까지 약 2년간 일본군 보병 14연대가 의병진압 활동을 생생하게 기록한 '진중일지(陣中日誌 · 사진)'를 공개했다.
기쿠치(菊池) 대좌가 이끈 일본군 14연대는 이쿠다 대좌가 이끈 보병 47연대와 함께 한반도 의병 진압의 주력부대로 장교와 상당관 66명을 포함한 1291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의 의병 진압 및 귀환 준비 과정을 14책 2400여쪽에 담은 '진중일지'는 이른바 '적도(賊徒 · 의병)토벌' 상황을 날짜나 분 단위로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상세하고 방대하다.
상급부대인 12여단장의 지시사항부터 파견 인원 구성과 경비,진압 지역의 약도와 물자,교통,위생,토민(주민) 동태,병사들의 식사,날짜와 요일 및 기온,군수물자와 부대이동,무기 · 탄약 · 위생 · 군기위반,전투상황과 의병들의 활동상 등을 명령,보고,회보,전보,전화,밀보(비밀보고),통첩,전투보고,진압보고,상보 등 다양한 이름으로 치밀하게 기록했다. 의병진압 작전지도도 50점가량 수록돼 있다. 특히 진압상황에 대해서는 적의 수와 전투상황,양측의 사상자,소비한 탄약과 노획 물품 등을 자세하게 적었다.
의병활동에 협력하거나 의병의 소굴이 된다는 이유로 양민을 사살하고 사찰을 소각하려 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들은 1907년 9월15일의 문경 전투 보고에서 '적의 수괴는 이강년(李康秊)인데 사망자 중에는 찾지 못하였고… 의병이 사용한 화약탄환을 저장하여 전투 후 해당 촌락을 소각함'이라고 밝혔다.
이틀 뒤 보고에는 '문경 대승사가 의병에 협조하고 의병의 소굴이어서 불태워버리려 했지만 승려들의 간곡한 부탁에 특별히 존치시켜 준다'고 기록했다. 또 작전 수행에 필요한 군량 중 3분의 1은 각 부대가 지방에서 조달토록 했다.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의병장들의 이름과 활동상도 다수 확인됐다. 의병부대 체계도에 나온 3도 도원수 윤영수와 지리산 방면 의병대장 박동의 및 휘하 대장들은 기존 독립유공자 인명에 없는 인물들이어서 독립운동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심광주 관장은 "현존 의병 진압기록 중 가장 방대하고 치밀한 자료"라고 평가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