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수도 베를린 남동쪽으로 230㎞가량 떨어진 프라이베르크에 위치한 도이체 솔라.세계적인 태양광 회사답게 건물 외벽에 태양전지판이 가득 붙어 있다. 건물 안도 마찬가지다. 하루 20만셀(cell)씩 생산하는 태양전지판이 잔뜩 쌓여 있다.

세계 3대 태양광업체인 솔라월드의 독일법인답다. 도이체 솔라는 처음부터 솔라월드가 투자한 회사는 아니었다. 모태는 독일 제약회사이자 화학회사인 바이엘이다. 바이엘은 1994년 신 · 재생에너지에 투자하기 위해 자회사로 도이체 솔라를 설립했다. 대표적 굴뚝기업인 화학업체가 이미 15년 전에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쏟은 노력의 결실이 지금의 도이체 솔라다.

바이엘이 앞서 간 길을 최근 대부분 기업들이 따라가고 있다. 듀폰 BP 카길 등 대표적 굴뚝기업들이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 앞다퉈 변신하고 있다. 그린 에너지를 선점하기 위한 기업 간 경쟁은 더욱 불꽃을 튀기고 있다.



◆듀폰이 그린 에너지 기업이 될 줄은…

듀폰은 세계 최초로 나일론 스타킹과 칫솔을 상용화한 것으로 유명하다. 경제전문지 포천이 1955년부터 선정해온 세계 500대 기업 명단에서 한번도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장수하는 기업이기도 하다. 고비를 맞을 때마다 기가 막힌 혁신으로 강자의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이 회사는 2001년에도 고비를 맞았다. 나일론 등 기존 제품의 성장 정체로 매출이 전년 대비 13% 급감했다. '굴뚝기업의 한계에 부딪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랐다.

이때 듀폰이 선택한 게 그린 에너지 기업으로의 변신이다. 듀폰은 회사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의류용 섬유 부문을 과감히 매각했다. 대신 신 · 재생에너지 관련 소재 개발을 신성장 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연료전지 및 태양광 부품의 근간이 되는 소재를 경쟁사보다 앞서 개발하는 데 매달렸다. 전략은 적중했다. 연료전지 및 태양광에 사용되는 소재를 개발함으로써 관련 시장을 휘어잡았다. 듀폰의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태양광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다.

뿐만 아니다. 지속적인 공정 개선과 기술 개발로 온실가스와 유해물질의 발생과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모두 2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산된다. 탄소배출권 거래가 활성화되면 감축분을 시장에 내다팔 수도 있다. 배출권을 사야 할 거대 화학회사가 오히려 탄소배출량을 줄여 돈을 벌게 되는 셈이다.

◆농기계 회사 존 디어의 풍력기업 변신

존 디어(John Deere)는 세계 최대 농업용 트랙터 제조업체다. 아무리 세계적 업체라지만 농기계를 만들어 고속 성장을 지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한계를 돌파하고 녹색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 업종의 특수성을 활용하기로 했다. 농민들과 연계한 풍력발전사업에 진출하기로 한 것이다.

사업구조는 간단하다. 개별 농민이나 농민단체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에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생산된 전기를 지역 전력회사에 판매하는 사업이다. 문제는 투자금액이었다. 농촌지역 풍력발전엔 프로젝트당 1000만달러가 필요하다. 부지를 확보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더 커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존 디어의 아이디어는 비용 분담이었다.

사업비의 절반은 존 디어가 부담키로 했다. 나머지 절반은 금융회사나 투자자로부터 유치하기로 했다. 농민은 부지를 제공하는 조건으로 사업비의 0.1%가량만 부담한다. 여기서 얻는 이익은 골고루 배분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식이다.

개별 프로젝트에서 가동되는 풍력발전 설비는 보통 7.5~15㎿급.이를 통해 5000~1만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여기서 벌어들이는 돈은 연간 100만~150만달러에 달한다. 투자금 회수와 이익 배분이 끝나면 발전기 소유권은 농민들에게 이전된다. 존 디어는 주력업종을 잘 활용해 그린 기업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



◆BP와 카길도 그린 에너지 기업?

듀폰이나 존 디어 외에도 내로라하는 굴뚝기업들이 잇따라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고 있다. 세계적 석유 메이저인 BP(British Petroleum)는 아예 사명을 'Beyond Petroleum'으로 바꿨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인 석유에너지를 영위하는 기업이 석유를 뛰어넘겠다는 것은 어쩌면 아이러니요,지나친 욕심일 수 있다. 그렇지만 BP는 태양광 풍력 수력 등 신 · 재생에너지 분야에 투자를 늘리며 더 이상 석유기업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국제 곡물시장을 지배해온 카길도 마찬가지다. 주된 업종인 농작물을 활용해 옥수수 등에서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고 있다. 때마침 바이오 에탄올 보급을 늘리겠다는 미국 정부 정책과 맞물려 빠르게 그린 기업으로 변신 중이다. 최근 바이오 플라스틱으로까지 사업 범위를 넓혔다. 자연상태에서 저절로 분해되는 이른바 '썩는 플라스틱'인 생분해성 바이오 플라스틱(PLA)의 세계 최대 제조업체인 네이처웍스가 카길의 자회사다.

◆전자업체도 그린으로

그린바람은 전자 및 IT(정보기술) 업체에도 불고 있다. 생산과정에서부터 판매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한창이다. 그린 이미지를 강화하는 데도 열심이다.

비정부기구(NGO) 등은 업종별 그린화 정도를 지수로 발표하기도 한다. 환경운동단체인 그린피스가 전자업체를 대상으로 발표하는 '그린화 순위'가 대표적이다. 지난 7월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그린화 정도가 가장 앞선 전자업체는 10점 만점에 7.5점을 얻은 핀란드의 노키아로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7.2점으로 뒤를 이었다. 소니에릭슨(6.5점)이 3위,LG전자(5.8점)가 4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과 LG가 그린화 정도에서도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게임업체인 닌텐도는 1.0점으로 조사대상 기업 중 꼴찌를 기록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업종에 관계없이 그린으로 변신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탄소 배출량을 줄이지 않으면 수출이 힘들게 된다. 녹색산업이 커질수록 기존 산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어떡하든 신성장 동력을 신 · 재생에너지 등에서 찾아야만 한다. 더욱이 소비자들이 급속히 그린화되고 있다. 그린 이미지를 선점하지 못하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받기 십상이다. 그린 에너지 세계대전이 앞으로 더욱 격렬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다.

프라이베르크(독일)=이정선 기자/김세환 딜로이트안진 녹색경영센터장 sun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