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변수 많은 개각 방정식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몇 년 전 청와대 출입기자 때 제일 신경쓰였던 것은 시도때도 없던 인사취재였다. 크고 작은 자리로 대통령 임명직이 의외로 많았다.
다음 날이면 정확히 발표날 것을 밤늦도록 요로요로에 전화를 해대는 것은 기본이었다. 공직이라지만 일반 독자들도 과연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관행처럼 이어진 일선 기자들의 속보(速報)경쟁 때문은 아니었는가,그런 반성도 해본다.
당시 청와대발 인사취재를 하면서 몇몇 특이점을 느꼈다. 지금도 그대로인 듯하다. 말그대로 발표 때까지 인사내용은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이 그 첫번째다. 어느 외청장 인사 취재 때의 당혹스런 경험이 생생하다.
오후 늦게 실세 참모라는 이들에게 연락,모 경제관료가 1순위로 확정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확인 차원에서,인사도 겸해 내정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간접 통보받은 셈이다. 잘 봐달라" "더 발전하시라"며 덕담까지 나눴다. 바로 이튿날,대변인은 다른 이름을 발표했다. 뒤에 알아보니 최종 순간에 외부 입김이 미친 경우였다.
저명 교수 등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명망가가 막바지에 미끄러진 때도 적지 않았다. 뒷얘기를 들어보면 대개 민정 쪽 인사검증에서 걸린 케이스였다. 그런 인사 중 일부는 정부가 바뀌면서 요직에 기용돼 있다. 물론 지금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자리다. 관변의 활동가 중에서는 이 정부 저 정권 구별 않고 기웃거리는 인사들도 적지 않은 게 우리 풍토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직인력 시장은 좁고 뻔하다. 4년 전 국무위원들까지 인사청문 대상이 되면서 인력풀은 더 줄어들었다. 정권이 교체됐지만 늘 구인난이란 하소연에 수긍되는 이유다.
개각시즌이면 청와대 담당 못지않게 여당담당 기자들의 하마평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여전히 시사적이다. 인사에 여당 입김이 매우 강한 현실 때문이다. 여당발 기사는 정치권에서 자천타천으로 인사에 압력 넣는 또 하나의 통로다. 문제는 여당의 목소리가 인사권자에게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특정 장관직을 놓고 여당 내 실력자들이 대놓고 힘을 겨룬 것도 오래지 않은 기억이다.
행정부 인사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엄한 잣대를 대면서도 법원 쪽에 대한 검증비중은 약한 것 역시 한국적 특성인 듯하다. 대법원 헌재 등 사회의 주요 쟁점을 판가름하고 가치판단까지 하는 사법부의 임기형 상위 요직보다 1~2년 남짓의 정무형 장관자리가 더 중요할까. 늘 자문해보는 화두다. 행정부 위주로 공직의 판이 짜여온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개각을 두고 장기간 숙고 중이라고 한다. 국정의 효율을 본다면,할 거면 빨리 하는 게 물론 좋다. 여당은 물론 대통령 주변의 여러 측근으로부터 '인사독립'도 중요하다. 하마평 기사가 잦아지고,특히 그런 기사가 여당발로 많이 나올수록 뒷말이 적은 인사는 그만큼 멀어진다. 그 쪽의 취재 대상을 유추해볼 때 특히 그렇다.
여론의 예상 범위에서 과도하게 벗어나는 인사도 썩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다수의 예상을 깼다는 것은 유력한 후보에 결격사유가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고,깜짝인사는 정책의 리스크도 그만큼 키운다. 인사 관련 공식업무라인을 제쳐놓고 비선에서 추천됐을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도 된다. 대통령이 신경써야 할 또 한 가지는 인사기사의 흐름이나 크기는 너무 의식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장관,수석보다 외청장,공기업 사장,중앙은행의 요직 선임이 더 중요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다음 날이면 정확히 발표날 것을 밤늦도록 요로요로에 전화를 해대는 것은 기본이었다. 공직이라지만 일반 독자들도 과연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관행처럼 이어진 일선 기자들의 속보(速報)경쟁 때문은 아니었는가,그런 반성도 해본다.
당시 청와대발 인사취재를 하면서 몇몇 특이점을 느꼈다. 지금도 그대로인 듯하다. 말그대로 발표 때까지 인사내용은 장담하기 힘들다는 점이 그 첫번째다. 어느 외청장 인사 취재 때의 당혹스런 경험이 생생하다.
오후 늦게 실세 참모라는 이들에게 연락,모 경제관료가 1순위로 확정됐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확인 차원에서,인사도 겸해 내정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간접 통보받은 셈이다. 잘 봐달라" "더 발전하시라"며 덕담까지 나눴다. 바로 이튿날,대변인은 다른 이름을 발표했다. 뒤에 알아보니 최종 순간에 외부 입김이 미친 경우였다.
저명 교수 등 유력 후보로 거론되던 명망가가 막바지에 미끄러진 때도 적지 않았다. 뒷얘기를 들어보면 대개 민정 쪽 인사검증에서 걸린 케이스였다. 그런 인사 중 일부는 정부가 바뀌면서 요직에 기용돼 있다. 물론 지금은 청문회를 거치지 않는 자리다. 관변의 활동가 중에서는 이 정부 저 정권 구별 않고 기웃거리는 인사들도 적지 않은 게 우리 풍토다. 그럼에도 한국의 공직인력 시장은 좁고 뻔하다. 4년 전 국무위원들까지 인사청문 대상이 되면서 인력풀은 더 줄어들었다. 정권이 교체됐지만 늘 구인난이란 하소연에 수긍되는 이유다.
개각시즌이면 청와대 담당 못지않게 여당담당 기자들의 하마평이 심심찮게 나오는 것도 여전히 시사적이다. 인사에 여당 입김이 매우 강한 현실 때문이다. 여당발 기사는 정치권에서 자천타천으로 인사에 압력 넣는 또 하나의 통로다. 문제는 여당의 목소리가 인사권자에게 선택의 폭을 좁게 만든다는 점이다. 실제로 특정 장관직을 놓고 여당 내 실력자들이 대놓고 힘을 겨룬 것도 오래지 않은 기억이다.
행정부 인사에 대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엄한 잣대를 대면서도 법원 쪽에 대한 검증비중은 약한 것 역시 한국적 특성인 듯하다. 대법원 헌재 등 사회의 주요 쟁점을 판가름하고 가치판단까지 하는 사법부의 임기형 상위 요직보다 1~2년 남짓의 정무형 장관자리가 더 중요할까. 늘 자문해보는 화두다. 행정부 위주로 공직의 판이 짜여온 우리사회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
청와대가 개각을 두고 장기간 숙고 중이라고 한다. 국정의 효율을 본다면,할 거면 빨리 하는 게 물론 좋다. 여당은 물론 대통령 주변의 여러 측근으로부터 '인사독립'도 중요하다. 하마평 기사가 잦아지고,특히 그런 기사가 여당발로 많이 나올수록 뒷말이 적은 인사는 그만큼 멀어진다. 그 쪽의 취재 대상을 유추해볼 때 특히 그렇다.
여론의 예상 범위에서 과도하게 벗어나는 인사도 썩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다수의 예상을 깼다는 것은 유력한 후보에 결격사유가 드러났을 가능성이 크고,깜짝인사는 정책의 리스크도 그만큼 키운다. 인사 관련 공식업무라인을 제쳐놓고 비선에서 추천됐을 가능성도 높다는 얘기도 된다. 대통령이 신경써야 할 또 한 가지는 인사기사의 흐름이나 크기는 너무 의식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장관,수석보다 외청장,공기업 사장,중앙은행의 요직 선임이 더 중요할 때도 많기 때문이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