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전 서울 청량리역.장대비가 쏟아지는 궂은 날씨에도 휴가를 떠나는 여행객들로 역사는 활기찬 모습이다. 청량리역은 경춘선과 중앙선의 시 · 종착역이다. 그래서 경기 · 강원 지역으로 가는 열차가 특히 많고,대학생과 군인 등이 많이 찾는 '젊은 역'이기도 하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의 장재기 기관사(43)는 이곳에서 일한 지 올해로 11년째.고정된 레일 위를 달리기 때문에 방향 전환을 위한 핸들도 없이 속도만 조절하며 기관차를 운전하는 일은 어쩌면 단순노동일지 모른다. 하지만 수많은 승객의 안전을 책임진 기관사에겐 열차를 운행하는 시간이 모두 긴장의 연속이다. 선로의 이상이나 낙석,갑자기 뛰어드는 사람과 차량 등 돌발 사태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다. 단조로운 선로 위를 달리는 지루함과의 싸움은 도를 닦는 일이나 다름 없다. 청량리역 사무소에는 이렇게 일하는 기관사가 300명을 넘고,장 기관사보다 오래 근무한 사람도 180여명이나 된다. 장 기관사를 청량리역 승무사무소에서 만나 열정과 책임감으로 똘똘 뭉친 기관사들에 대해 들어봤다.




▼육군 장교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육군 제3사관학교를 나와 1986년 12월 경기도 파주에 있는 9사단(백마부대)에서 소위로 임관해 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의정부,강원도 인제 등을 돌아다니며 1992년 11월 대위로 전역할 때까지 약 6년간 군복을 입었죠."

▼왜 군인을 그만뒀나요.

"어렸을 때부터 철도를 동경했어요. 제 고향이 경북 울진인데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작은아버지 댁인 동해로 가는 기차를 처음 타 보고 그만 열차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죠.어린 마음에 열차가 어떻게 가는지,누가 이 열차를 움직이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대학시절 군대를 가야 했을 때 차라리 장교가 되자 생각하고 3사관학교에 갔는데 중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나면서 운명이 바뀌어 버린 거죠.아내가 그때 역무원이었거든요. 나중에 알게 됐지만 장인 어른도 철도 공무원이셨어요. "

▼부인을 통해 옛 꿈을 다시 발견했다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아내는 당시 영주역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제가 부석사로 놀러갔을 때 아내에게 교통편 등 이것저것 물어보다 서로 친해졌고 결국 결혼에 골인했죠.제가 내성적인 성격이라 낯선 여자에게 말도 제대로 못붙이는 스타일인데 그때는 어떻게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하하."

▼기관사가 되기 위한 공부가 힘들진 않았나요.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했고,군대에선 주특기가 보병이었죠.그러다 공무원 시험을 위해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하려니 용어부터 낯설어 고생했습니다.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2년간의 수험 기간에 돈을 벌지 못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6년간의 군생활로 받은 퇴직금은 얼마 안 돼 다 떨어졌고 아내가 여기저기 돈을 구하러 다녔죠.저도 아르바이트도 하고 막노동을 하기도 했어요. 돈이 없어 당시 여섯 살이던 아이를 유치원에 몇 달간 보내지 못한 적도 있었는데 그땐 정말 너무 가슴이 아팠지요. "

▼기관사가 됐을 때 기분이 어떻던가요.

"1996년 철도청 동력차 승무원직(9급 공무원)에 합격했지만 1년6개월 동안이나 발령이 나지 않아 또다시 고생을 해야 했죠.발령이 안 나면 급여도 나오지 않거든요. 그렇다고 시험에 합격까지 했는데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정말 난감했어요. 다행히 1998년 6월에 청량리역 기관조사(현 부기관사)로 발령이 나면서 기관사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죠."

▼열차를 운행할 때 무엇을 하나요.

"열차 조종석에는 기관사와 부기관사 2명이 탑승합니다. 기관사는 수백여 명의 승객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열차 운행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집니다. 열차는 정해진 궤도 위를 달리기 때문에 자동차처럼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핸들이 따로 없습니다. 속도만을 조절해 열차를 운행하는데 휘어지는 각도에 따라 제한속도가 다 정해져 있어요. 기관사가 한 곳에서 오래 근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관사는 자기가 운전하는 열차가 어느 구간에서 시속 몇 ㎞로 달려야 하는지 훤하게 알고 있어야 해요. 또 2만5000볼트에 달하는 전기가 송전선으로부터 제대로 공급되는지,브레이크 공기압이 떨어지지 않았는지를 체크하고 정차역에서 출발하거나 도착할 때마다 여객전무와의 무전 교신을 통해 승객들이 안전하게 타고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제 임무죠."

▼좁은 공간에서 장시간 운전하다 보면 지루해서 졸음도 올 텐데요.

"고작 2평 남짓한 공간에 갇혀 일을 하는데 물론 졸음이 올 때도 가끔 있죠.그럴 때마다 부기관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거나 노래를 시키기도 합니다. 저도 예전에 노래 많이 했습니다. 하하."

▼일하면서 어떤 점이 가장 힘든가요.

"업무의 특성상 야간 근무가 많아 생활이 불규칙한 게 가장 큰 단점이죠.기관사들이 저녁만 되면 나갔다가 아침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으니까 이웃 주민들이 간첩인 줄 알고 신고했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어요. 저는 집이 원주인데 서울에서 원주를 가더라도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일이 끝나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있죠."

▼장거리를 운행할 때 생리현상은 어떻게 하나요.

"역에 정차할 때 화장실에 뛰어가서 볼 일을 보기도 하지만 주로 소변은 근처 숲에 들어가 해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화장실이 너무 먼데다 안전운행을 위해 이것저것 챙겨야 할 게 많거든요. "

▼안전운행 최우수 기관사로 표창도 받았다면서요.

"2006년 열차를 운행하면서 선로에 진동이 있다든지 낙석이 우려된다든지 하는 등의 각종 이상 징후를 100회 이상 보고해 회사로부터 '열차 안전운행 최우수 기관사'에 뽑혀 상을 받았습니다. 제가 좀 꼼꼼한 편이어서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보고해 개선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혹시 사고를 낸 적은 없나요.

"한 번 있었어요. 역 내에서 열차를 몰다가 송전선이 없는 곳으로 잘못 움직여 '팬터그래프'(Pantograph · 기관차와 송전선을 연결해 동력을 공급하는 장치)가 파손된 적이 있었어요. 그때는 열차를 잘못 인도한 역 직원의 책임이 더 크다며 가벼운 징계에 그쳤지만 지금도 '사고는 정말 한순간이구나' 싶어 더욱 조심하려고 애씁니다. "

▼기관사로서 어떤 보람을 느끼고 있나요.

"기관사는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의 변화를 가장 먼저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직업입니다. 특히 제가 일하는 경춘선이나 중앙선 주변은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워요. 예를 들면 원주에서 서울로 오는 중앙선에 치악고개를 넘는 구간이 있는데 새벽 안개를 헤치고 달리는 열차 안에서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올 때의 풍경을 볼 때면 정말 야간 근무의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집니다. 그래서 기관사들끼리 '남들은 돈 내고 여행하는데 우리는 돈 받아가며 여행하니 얼마나 좋은 직업이냐'고 농담하기도 하죠."

▼가장 좋은 여행지를 추천하신다면요.

"일반적으로 강촌이나 대성리가 있는 경춘선을 많이 이용하시는데 사실 중앙선에도 가볼 만한 여행지가 많아요. 중앙선을 타고 가다 보면 경기도 양평에 구둔역이라는 간이역이 있는데 역사(驛舍)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요. 역전에는 커다란 아름드리 나무가 있는데 주변 풍광도 참 아름답습니다. 또 강원도 원주의 간현역도 둘러볼 만합니다. 특히 이곳 주변에는 유원지가 많고 산과 강을 끼고 있어 휴가지로도 인기가 높지요. "

▼쉬는 날은 주로 무엇을 하세요.

"주로 철도와 관련된 책을 읽거나 등산이나 마라톤 같은 운동을 합니다. 작년에는 마라톤대회에서 10㎞를 42분에 뛰었어요. 올해에는 종아리 부상으로 쉬고 있지만 내년에는 풀코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해 완주할 겁니다. "

▼앞으로 목표는 뭔가요.

"기관사에게 승객의 안전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이미 경력에 한 번의 오점을 남겼는데 앞으로 다시는 그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죠.그리고 매년 전국의 기관사를 대상으로 '으뜸기관사'를 뽑는데 이 대회에 출전해 제 실력을 당당히 겨뤄보고 싶어요. "

글=이호기/사진=정동헌 기자 hglee@hankyung.com

철도기관사의 세계 ]

필기ㆍ모의 연습시험 철도차량 운전면허따야
부기관사 초임 年3000만원선…정년보장 '장점' 경쟁률 높아


철도 및 전동차 기관사가 되기 위해서는 철도안전법에 따라 국가공인 철도차량 운전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면허를 따려면 우선 적성검사 및 신체검사 등에 합격한 뒤 지정 교육훈련기관(현재 코레일 인재개발원)에서 면허 종류와 관련 분야 경력에 따라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면허시험은 필기시험과 모의운전연습기(Simulator)를 통한 기능시험으로 구분되는데 이 시험에 합격하면 면허를 준다.

면허의 종류는 총 5종으로 고속차량(KTX) 운전면허,디젤차량 운전면허,제1종 전기차량(전기기관차) 운전면허,제2종 전기차량(전동차) 운전면허,철도장비(장비차량) 운전면허 등이다. 면허를 취득한 이후 철도 운영기관에 입사해 운전 실무수습을 받고 나면 기관사로서 열차를 직접 운행할 수 있게 된다.

코레일이나 서울메트로 등 철도 운영기관에 따라 실시되는 채용은 대체로 비슷한 프로세스로 이뤄진다. 최근 학력과 전공에 대한 제한은 없어지는 추세로 시력,청력 등 기본적인 신체조건에 문제가 없는 철도차량 운전면허 보유자라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시험은 주로 서류전형,필기시험,적성검사,신체검사,면접 등의 순으로 이뤄지며 국가유공자나 기능사 등 관련 자격증 소지자에게는 가산점이 부여된다.

향후 고용 전망도 밝은 편이다. 코레일의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철도의 여객 및 화물 수송실적은 2004년 이후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지하철은 경전철 도입,지방노선 증설,기존 철도의 복선 전철화 등으로 인력수요가 계속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코레일에서 근무하는 기관사(부기관사 포함)의 숫자는 약 4000명에 달한다.

급여는 부기관사의 초임 기준으로 연 3000만원 선.보수가 높은 편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철도 운영기관이 공기업이라 큰 사고만 없다면 정년까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어 입사 경쟁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