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은 14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이건희 전 삼성 회장 등의 배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이 전 회장 등이 당시 BW 저가발행이 위법이 아닌 것으로 믿을 만한 정황이 있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다. 또 이 전 회장이 손해액을 넘는 227억여원을 삼성SDS에 납부해 피해가 대부분 회복됐고,이후 회사발전에 기여한 점을 책임감소 사유로 들었다.

이로써 1996년 에버랜드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시작된 삼성그룹의 '경영권 편법승계' 논란이 13년간 특별검사의 수사와 대법원의 파기환송을 거치는 곡절 끝에 일단 유죄로 가닥이 잡힌 채 사실상 종착역을 앞두게 됐다. 그러나 특검과 삼성 측이 판결문 검토 뒤 재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최종 판단이 대법원으로 다시 넘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BW 저가발행은 인정

재판부는 1999년 당시 삼성SDS의 주당 적정가격(공정 신주인수권 행사가격)을 1만4230원으로 산정한 뒤 총 배임 액수를 227억7480여만원으로 판단,특경가법상 배임(50억원 이상)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가증권 인수업무에 관한 규정 및 시행세칙에 따라 주당 순자산가치와 주당 순이익가치를 가중평균해 공정 행사가격을 객관적으로 산정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실제 행사가격(7150원)이 공정 행사가격(1만4230원)의 절반에 불과해 현저하게 불공정한 가액으로 발행됐다고 판단되며,저가발행에 대한 미필적 고의가 있다"고 판시했다.

◆"위법 아니라고 믿을 만한 여지 있었다"

재판부는 그러나 "비상장주식은 상장주식에 비해 거래가격의 객관성이나 합리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어 일관된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고 전제한 뒤 "당시 BW 발행 시 따라야 할 확립된 법령이나 판례가 없었기 때문에(이 전 회장 등이 저가 발행에 대해)위법이 아닌 것으로 인식할 여지가 있었다고 보이며,이 경우 비난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집행유예 선고 이유를 밝혔다.

파기환송심의 또 다른 판단 대상이었던 차명주식에 대한 조세포탈 부분은 대법원 판결이 그대로 유지됐다. 이번 판결로 이 전 회장의 형량이 늘어나지는 않았다. 이 전 회장은 이미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벌금 1100억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날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은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5년,김인주 전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판결에 지난 7월 도입된 양형기준은 적용되지 않았다. 이번 사건이 제도 도입 전에 기소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법원 관계자는 "새 양형기준을 적용하더라도 이날 선고된 이 전 회장의 형량은 양형 기준상 권고형량 범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로 시행된 양형기준에서도 벗어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한편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는 이번 판결에 대해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인들의 경영활동을 위축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해성/서보미/송형석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