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챔피언이 된 양용은은 한국을 거쳐 일본 무대에서 활약할 때만 해도 그리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특히 드라이버샷 거리는 많이 나는 등 잠재력은 크지만 침착한 경기 운영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2006년 11월 유럽프로골프(EPGA) 투어 HSBC챔피언스에서 우즈를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을 때만해도 양용은의 운(運)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양용은 본인도 우즈를 꺾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귀국 비행기에서 앞 자리에 앉은 사람이 자신의 우승 소식을 실은 신문을 펴들고 있었는데 자신과 우즈가 함께 있는 사진을 보고 합성사진인 줄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용은은 우즈를 꺾고 우승한 직후 일본 무대를 벗어나 더 큰 무대로 가겠다는 포부를 가졌다.

유럽 투어에서 우승을 거뒀기 때문에 유럽 대회와 미국 PGA투어 일부 대회에 나가 상금 획득으로 PGA투어 진출을 꾀했다. 당시 이러한 양용은의 계획을 말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유러피언투어 우승이 양용은에게는 독이 될 지도 모른다는 우려섞인 걱정도 주변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2004년 일본으로 진출한 양용은은 일본에서 4승을 거두면서 나름대로 안정적인 발판을 마련한 상황이었다. 일본 대회를 뛰면서 간간히 한국 대회에도 출전해 상금을 획득하며 1년에 3-4억원 정도의 수입은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양용은도 최경주와 마찬가지로 그리 넉넉한 집안 출신이 아니다.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나이트클럽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져 있다. 양용은이 1999년 국내 신인상이 됐을 당시에 상금으로 받은 돈이 1800만원에 불과해 레슨을 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열악했다.

어렵고 힘들게 선수 생활을 해온 것을 알기 때문에 양용은을 잘 아는 주변사람들은 스스로 고생길로 들어서는 양용은을 이해하기 힘들어했다.

양용은을 잘 아는 선수들은 그의 미국행을 말린 이유 중의 하나로 지나치게 코스 공략이 무모하다는 점을 들었다. 투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험보다는 안전을 택하고 돌아가는 법도 알아야 하지만 양용은은 무조건 ‘고(GO)’ 스타일이라는 것이다. 골프선수가 생각없이 ‘아님 말고’식으로 밀어부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한 성격은 아니다.

주변의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2007년 미 PGA투어 9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벌어들인 상금은 고작 5만3000달러에 불과했다. 그래도 그해 말 퀄리파잉스쿨을 6위로 통과해 PGA투어 정회원이 됐지만 상금 순위 157위로 밀려나 투어 카드를 잃었다. 다시는 가고 싶지 않다는 ‘지옥의 레이스’를 다시 겪으며 양용은은 공동 18위로 투어 카드를 되찾았다.

올해 혼다클래식 우승으로 그동안 고생한 보람을 격려받은 양용은은 지금까지 아시아인으로는 아무도 올라보지 못한 메이저대회 우승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양용은은 안정된 삶을 버리고 도전을 택했다. 우즈와의 마지막날 경기를 보면서 일본에서 보여주던 무모한 샷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시종일관 침착함을 잃지 않는 모습은 그동안 산전수전 겪으면서 내공이 쌓인 탓이다. 메이저대회에서 14번이나 최종 라운드 선두로 나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무적 거함’ 타이거 우즈를 침몰시킨 쾌거는 그의 ‘무모한 도전’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이애미(미 플로리다주)=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