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렌프루에 있는 두산밥콕은 지난달 24일 40㎿급 석탄화력발전소용 보일러의 '순(純)산소 연소 실험'에 성공했다. 순산소 연소기술은 공기대신 산소만으로 석탄을 태우는 기술을 말한다. 산소만으로 석탄을 태우면 이산화탄소와 물만 배출된다. 이산화탄소를 100% 모아 압축 과정을 거쳐 폐기하면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고 화력발전소를 가동할 수 있다. '녹색발전소'가 가능하게 되는 셈이다. 이번 실험 성공으로 두산밥콕의 모회사인 두산중공업은 세계 최초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화력발전소에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두산중공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녹색성장시대는 어느 기업에나 기회를 준다. 비단 녹색 관련 기업만이 아니다. IT(정보기술),BT(바이오기술) 등 첨단 산업은 물론 철강이나 화학,중공업 등 전통 제조업체들까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있다. 친환경 흐름 속에 숨어있는 새로운 사업의 모티브를 의미하는 '그린 시드(green seed)'를 발굴하느냐 여부가 기업의 흥망을 좌우할 변수로 등장했다.



◆자신의 강점에서 그린 시드를 발견하라

그린 시드의 대표적인 분야가 발전에 따른 탄소 발생을 최소화하는 '그린 발전'산업이다. 지구상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40%가량은 화력발전소에서 나온다. 이를 없애거나 줄이는 게 급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새로 짓는 석탄 및 가스화력발전소는 탄소 발생을 최소화하는 규제가 도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탄소 발생을 최소화하려면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기술(CCS)을 적용해야 한다. 이 시장이 연간 50조~60조원에 달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시장 자체가 어머어마하다. 반대로 독자적인 저탄소발전 기술을 갖추지 못한 업체는 미국,유럽 등 선진국 발전설비 시장에 진입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올 전망이다.

두산중공업은 이를 꿰뚫어 보고 발전산업에서 그린 시드를 찾았다. 두산밥콕의 전신은 세계적인 발전설비기술을 보유한 미쓰이밥콕.두산중공업은 2006년 이 회사를 인수하면서 그린 시드를 그린사업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순산소 연소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 두산중공업은 2013년 이후 연 평균 10억달러 이상의 신규 수주 기회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최대 단조업체인 태웅도 그린 시드를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태웅은 쇳덩어리를 불에 달군 뒤 프레스 등으로 두드려 각종 기계부품을 만드는 회사다. 특히 선박과 기계에 들어가는 단조부품에 강점을 보였다. 태웅이 찾은 그린 시드는 풍력발전용 부품 제작.자신들의 강점인 단조부품 기술을 떠오르는 시장인 풍력발전과 접목했다. 2003년 GE에 풍력발전용 타워플랜지와 메인 샤프트를 공급하면서 풍력발전업체로 거듭났다.

풍력발전부문 매출은 2004년 97억원에서 작년엔 2996억원으로 급증했다. 전체 매출에서 풍력부문이 차지하는 비중도 같은 기간 동안 15%에서 53%로 크게 높아졌다. 풍력단조품 시장 1위 업체로 도약한 것은 물론이다.

◆그린 아이콘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라

두산중공업과 태웅은 자신들의 강점에서 그린 시드를 찾았다. 그렇다면 녹색 관련 사업을 갖고 있지 않은 기업들은 영영 기회가 없는 것일까. 낙담할 필요는 없다. 친환경과 거리가 먼 전통 제조업 등 다른 기업들도 얼마든지 그린 시드를 발견할 수 있다. 온실가스,에너지,유해물질,물 등 이른바 '그린 아이콘(green icon)'을 사업부문과 접목하면 된다. 그린이 강조될수록 새로운 그린 아이콘이 나타난다. 이 아이콘을 누가 빨리 그린 시드로 활용하느냐가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 된다.

가정용 세제 전문업체인 타이드(Tide)가 대표적이다. 타이드는 그린 아이콘을 회사의 새로운 수익원에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가 냉수용 세제를 개발했다. 뜨거운 물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상당량의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전략은 주효했다. 편리한데다 에너지를 아낄 수 있어 가정주부들이 열렬히 호응했다.

과거 세제와 친환경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유해물질이나 물이었다. 그렇지만 그린시대에는 다르다.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하느냐가 친환경 세제인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떠올랐다. 타이드는 주목받지 않았던 에너지라는 그린 아이콘을 사업에 접목해 성공을 거둔 셈이다.

◆그린 아이콘을 그린 시드로 승화시켜라

그린 아이콘이 중요하다고 해서 무턱대고 활용하는 건 곤란하다. 업종별 · 제품군에 따라 중요도를 따져봐야 한다. 온실가스는 중요한 그린 아이콘이다. 이것이 중요하다고 자동차회사들이 자동차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어찌보면 낭비일 수 있다. 그보다는 실제 자동차가 운행할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힘을 쏟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각국이 자동차 배기가스를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 업종은 생산단계인 상위흐름(업스트림)보다 사용단계인 하위흐름(다운스트림)에서 그린 아이콘을 활용하는 게 더 중요하다.

석유화학 등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산업은 다르다. 이들 업종은 상위흐름에 해당하는 원료 생산이나 제조 단계에서 온실가스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주된 관건이다. 에너지 효율성 제고를 위한 기술 개발이나 환경규제 대응,프로세스 개선 등에 힘을 쏟는 게 순서다.

자동차업종과 석유화학업종은 어떤 단계에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주력할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세부 사업부문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어떤 단계에서 그린 아이콘을 활용해야 할지 아리송해 진다. 이를 위해선 제품 생산 및 소비의 단계별로 그린 아이콘을 어떻게 접목할 수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 글로벌 기업 중 상당수는 이미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이런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그린 아이콘은 이런 과정을 거쳐 활용도가 결정된다. 이 활용도가 극대화될 때 그린 시드로 발전할 수 있다. 녹색시대 기업의 흥망을 가를 그린 시드는 기업들의 사업 과정에 숨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얼마나 빨리 찾아내 제품으로 연결하느냐가 그린 기업으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좌우하는 것은 물론이다.

고경봉 기자/강동호 딜로이트안진 이사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