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대통령님.우리가 세상을 살며 이따금 무릎이 꺾이듯 눈앞이 아득해질 때가 있습니다. 올해 저는 그것을 두 번 경험합니다. 첫 번째는 지난 5월 그야말로 뜻하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였습니다. 그리고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아 갑작스러운 뉴스에 제가 무릎을 꺾고 말았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할 때면 늘 떠오르는 아주 오랜 풍경 하나가 있습니다. 1971년 대통령 선거 때입니다. 대관령 아래 산골마을이 고향인 저는 그때 중학교 2학년 학생이었습니다. 라디오를 틀면 제일 처음 나오는 뉴스가 '신민당 김대중 의원 자택 폭발물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은…'하는 말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일부러 더 지겹게 하려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강릉시내 거리에 나붙었던 현수막도 정확하게 기억합니다. 선거 벽보에서 처음 얼굴을 보았고,현수막엔 '대중은 김대중'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매일 뉴스시간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신민당 김대중 의원 자택 폭발물 사고를 수사하고 있는 경찰' 소식과 '대중은 김대중'이라는 선거구호에 이끌려 투표권도 없는 열네 살의 소년이 어느 날 강릉공설운동장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날 강릉공설운동장에 김대중 후보의 유세 연설회가 있었습니다. 열네 살짜리 소년이 무얼 알아서 그랬을까요. '저 아저씨,앞으로 사는 게 많이 힘들겠다' 하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쩌면 그것도 꼭 산골소년의 감과 일치했을까요? 소년은 자라서 군대에 갔고,이 땅에는 1980년의 봄이 있었습니다. 최전방 사단 연병장에서 어느 날 정오 뉴스를 통해 내란음모죄로 사형이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그때에도 무릎이 꺾이는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것밖에 안되나 싶어 눈물이 났습니다. 대통령님을 위해 처음 흘린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마음은 더없이 차분한데 다시 한줄기 눈물이 흐릅니다. 이 추도사를 쓰고 있는 서재엔 김대중 대통령님의 저서 《행동하는 양심으로》가 꽂혀 있습니다. 1985년 여의도 도서시장에서 산 것이고,그때 붓글씨로 직접 사인을 받은 책인데 그 제일 앞 사진이 바로 강릉공설운동장 연설회 사진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고비마다 힘들게 살아오셨는지요? 온몸으로,또 고비마다 목숨을 내놓으시고 이땅의 민주주의를 지켜오셨습니다. 마음으로만 옳게 생각하고,그런 생각을 바르게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그것은 바른 양심의 편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소외받는 자들 편에서,또 민주주의 편에서 이 나라를 지켜오셨습니다. 그러시느라고 퇴임하신 후에도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들이 뱉어내는 거친 비아냥과 모멸적인 공격도 이땅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처럼 다 받아내시고 다 겪어내셨습니다.

이제 어느 분이 계셔서 그처럼 큰 산과 같은 역할을 해낼 수 있겠는지요. 저는 대통령님의 서거 소식에 처음 대통령님의 존재를 알고,연설회장을 찾아갔던 그 시절의 소년으로 돌아가 내 마음의 캡틴을 하늘로 보내드려고 하는데,차마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편히 영면하시라고 말씀드려야 하는데,그럴 수가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님.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을 때,대통령님은 노 대통령께 '죽어도 죽지 마십시오'라고 하셨지요. 지금 대통령님을 보내는 제 마음이 그렇습니다. 대통령님,죽어도 죽지 마십시오.하늘에서도 계속 살아계셔서 평생 대통령님께서 지켜오신 이땅의 민주주의를 끝까지 저희와 함께 지켜주십시오.끝까지 이 나라와 이 국민을 지켜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