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리는 언덕에서 눈덩이(스노볼)를 굴리는 것과 같다. 작은 덩어리로 시작해서 눈덩이를 굴리다 보면 끝에 가서는 정말 큰 눈덩이가 된다. 나는 14세 때 신문 배달을 하면서 작은 눈덩이를 처음 만들었고,그 후 56년간 긴 언덕에서 아주 조심스럽게 굴려 왔을 뿐이다. 삶도 스노볼(눈덩이)과 같다. 중요한 것은 (잘 뭉쳐지는) 습기 머금은 눈과 진짜 긴 언덕을 찾아내는 것이다. '

'오마하의 현인'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의 투자철학이다. 전 세계의 기업인과 투자자들은 그가 어떤 '눈덩이'를 어느 '언덕'에서 굴리는지에 관심을 집중한다.

지난해 미국에서 화제를 모았던 그의 전기 《스노볼》이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1800쪽이 넘는 이 전기는 버핏의 성공 과정과 인간적인 면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저자는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 출신의 앨리스 슈뢰더.버핏이 그를 지목해 집필을 맡겼다. 슈뢰더는 2003년부터 5년간 이 작업에 매달려 버핏이 어떻게 성장하고 가정을 꾸렸는지,어떤 방법으로 천문학적인 부를 쌓았는지 치밀하게 밝혀냈다. 그가 묘사한 버핏은 완벽한 인물이 아니라 성실하고 열정적인 사람일 뿐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그의 사생활이다. 정신병이 유전되는 집안에서 태어난 어머니가 그와 누나를 학대하는 바람에 그는 늘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사교력도 떨어졌다. 돈 버는 일 빼고는 모든 분야에서 젬병이었다. 신혼여행 때도 '무디스매뉴얼'을 읽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버핏을 이끈 것은 헌신적인 아내 수전이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1970년대 위기에 빠졌다. 수전이 가수로서의 새 삶과 새 남자를 찾아 샌프란시스코로 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버핏은 사업에만 몰두한 탓이라고 자책했지만 수전은 그의 곁을 떠났다. 대신 버핏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은 친구 애스트리드 멩크스를 보냈다.

일부일처제 관습에 비춰볼 때 대단히 이상한 관계였지만 이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조화를 이뤘다. 수전과 버핏은 이혼하지 않고 자녀와 사업을 매개로 왕래했다. 멩크스는 조용히 집에서 버핏을 돌보는 그림자 아내로 살았다. 30년 후 수전이 구강암으로 세상을 떠났고,2년 후 버핏과 멩크스는 가족이 모인 가운데 정식 결혼식을 올렸다.

'두 명의 아내'를 둔 그의 가정생활만큼이나 그의 인생철학 또한 흥미롭다. 대공황기에 태어난 그는 여섯 살 때 이웃에게 껌을 팔아 처음 돈을 벌었고 열한 살 때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청소년기엔 아르바이트로 적은 돈을 불렸다. 본격적인 사업가가 된 뒤로는 석유 파동과 살로먼 브러더스 사태,9 · 11 테러 등 역사의 굴곡과 함께 '버핏 신화'를 만들었다.

그의 집중력과 학습량은 엄청났다. 도서관과 기록보관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며 숫자들과 씨름했다. 그는 또 '사람'을 중시했다. 신뢰할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들로 단단한 인맥을 구축한 뒤 그들과 평생 동안 우정을 이어갔다. 그는 투자자와 자산운용가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며 '빈틈없이 구축된 신뢰의 거미줄'로 사업을 펼쳤다. 마음이 통하는 주주들과 진정한 동반자 의식을 바탕으로 벅셔 해서웨이를 키웠고,'복리의 엔진'으로 주주들에게 부를 안겨줬다.

그에게 주주들은 단순한 고객이 아니라 그의 '투자 철학'과 '인생 철학'을 배우는 학생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 1980년대에 그는 벅셔 해서웨이의 연차 보고서에 "우리 회사는 주식회사의 형태이지만 우리는 동업자들로 구성된 합자회사를 대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우리는 회계로 장난을 치지 않는다"고 썼다.

사기와 술수가 난무하는 주식시장에서 철저하게 '정직'을 추구하며 얻어낸 주주들의 전폭적인 신뢰,첨단 금융공학과 소문들에 휘둘리지 않고 철저하게 '내면의 점수판'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사고방식,복잡한 문제들을 만났을 때 가장 최선의 방법을 단숨에 찾아내는 놀라운 판단력….버핏의 삶은 기회와 암초가 공존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세계를 비추는 거울이다.

작은 돈에 인색했던 그가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산을 모은 것은 '사회의 각 분야에 효율적으로 나눠 주기 위한' 것이었다. 자신은 그것을 잠시 맡아두는 '보관증'일 뿐이라는 것.2006년 그는 전 재산의 85%를 자신의 재단이 아닌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하며 돈을 어떻게 벌고 써야 하는지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줬다.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