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드] 재개발ㆍ재건축 초기부터 시ㆍ구청 관리… '전문 꾼' 개입 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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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거는 공공관리자 제도
민간조합이 사업 맡고 공공기관은 감독 '준공영'
주민갈등ㆍ비리요인 줄여, 사업비용ㆍ기간 단축 효과
특정 주민들 이익위해 혈세 쓴다는 비판도
민간조합이 사업 맡고 공공기관은 감독 '준공영'
주민갈등ㆍ비리요인 줄여, 사업비용ㆍ기간 단축 효과
특정 주민들 이익위해 혈세 쓴다는 비판도
지난달 31일 이산철 서울 용산구 부구청장은 한 행사에 참석해 식사를 하던 도중 긴급 보고를 받았다. 서울시 산하 '공공관리자 제도 시범지역 선정위원회'가 한남뉴타운 5개 구역 중 1개 구역(한남3구역)만 대상지로 최종 선정했다는 것이었다. 시범지역에는 서울시가 예산을 지원하는 만큼 다른 자치구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5개 구역을 모두 지정해줄 수 없다는 얘기였다.
이 부구청장은 밥을 먹다 말고 곧장 시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이덕수 서울시 행정2부시장부터 만났다. 이 부구청장은 한남뉴타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에 공공관리자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며 이 부시장을 설득했다. 이 부시장이 "정말 전체를 다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부구청장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부시장은 바로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국 한남뉴타운은 전체 지구에 공공관리자 제도를 시범 적용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대신 4개 구역에 대해서는 초기 사업비용을 서울시와 용산구가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이 부구청장은 "한남뉴타운은 2003년 뉴타운 지정 이후 6년이 흘렀지만 아직 기본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분 쪼개기가 극성을 부리는 등 투기가 판을 쳤고 수십개의 추진위원회(조합의 전 단계)가 난립해 주민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 여기만큼 공공관리가 절실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관리자 제도는 재개발 · 재건축 사업을 할 때 구청장이나 SH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이 초기 단계부터 직접 개입해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공공관리자 제도는 공공기관이 사업에 대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대신 개발 이익을 가져가는 공영개발과는 다르다. 흔히들 공공관리자 제도가 적용되면 서울시나 구청이 모든 일을 다 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공공관리자는 직접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
공공관리자라는 표현 그대로 공공기관은 관리 감독만 할 뿐 사업 시행의 주체는 여전히 조합이 맡도록 돼 있다. 따라서 공공관리자 제도는 공영과 민영의 중간 단계인 '준공영'인 셈이다.
이 제도는 그동안 전적으로 민간에 맡겨져 각종 조합 비리,주민 간 갈등,세입자 문제 등으로 얼룩졌던 기존 재개발 · 재건축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
현행 재개발 · 재건축은 해당 지역에서 건물이나 토지 등을 소유한 개인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하고 이 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재개발 · 재건축에 무지한 경우가 많은 데다 각자의 이해 관계도 서로 다르다 보니 스스로 조합을 구성하기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외부에서 개발이익을 노린 '꾼'들이 몰려들어 주민 동의를 받아 조합을 설립하고 집행부로 활동하면서 주민들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공사와 결탁하거나 공금 횡령 등 배임 행위를 저지르는 사례가 속출했다. 특히 구역 지정도 받지 않은 곳에서 많게는 수십 개의 추진위가 난립해 서로 주민 동의를 받겠다고 경쟁을 벌이는 통에 동의서를 암암리에 사고파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들 추진위는 수십여명의 도우미(OS요원)를 동원하고 시공권을 확보하려는 대형 건설사로부터 수십억원의 자금을 끌어다 쓰기도 했다.
경쟁에서 탈락한 추진위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로 전락한다. 비대위는 각종 소송을 남발해 갈길 바쁜 조합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식으로 10년 이상 사업이 지연되는 곳이 부지기수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 재개발 · 재건축의 사업 비용이 크게 높아진다. 이 같은 부담은 결국 조합원이나 나중에 일반 분양을 받는 실수요자에게 넘겨진다. 또 땅값이나 아파트값 상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공관리자 제도는 이 같은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탄생했다. 서울시는 1년여간의 연구 끝에 공공관리자 제도 도입 방안을 지난 6월 공식 발표했다. 공공관리자는 재개발 ·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기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즉 조합 설립이나 시공사 선정 등 각종 프로세스를 직접 관리 감독해 투명성을 높이고 사업비를 절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제도 도입으로 인해 전용면적 85㎡형 아파트를 기준으로 분양가가 1억원 이상 낮아지고 공사기간도 1~2년가량 단축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같은 서울시의 구상이 발표되자 재개발 · 재건축 지역의 주민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서울시가 최근 공공관리자 제도에 대한 시민 의견을 접수한 결과 전체 320건 가운데 찬성 의견이 270건(85%)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시는 첫 시범지구로 성동구 성수동 일대 성수 전략정비구역(약 66만㎡)을 지정했으며 한남뉴타운을 비롯한 6곳을 추가로 선정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모두 구청장이 공공관리자를 맡아 정비사업자를 선정하고 조합 구성을 위한 준비를 하는 등 재개발 ·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부터 적극 개입하게 된다. 선정된 정비업체는 권리관계 조사와 토지 등 소유자 명부 작성,주민설명회 및 주민총회 개최,각종 안내문 제작 발송,추진위원회 구성,동의서 징구 등의 정비사업 초기 실무를 담당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 예산에서 100% 지원받는다.
서울시는 공공관리자 제도 법제화와 관련해 현재 국토해양부,국회와의 협의를 거쳐 의원 입법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지금은 크게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공공관리자 제도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공공기관이 재개발 · 재건축의 초기 사업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특정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의 혈세를 쓰는 게 올바른 일이냐는 지적이다.
하반기에 예정돼 있는 법제화가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당장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서울시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보편적인 것인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신중한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관리자는 결국 기초지자체가 '관리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인데 정부 예산을 쓸 거라면 정부가 차라리 직접 시행까지 하고 책임을 지는 게 사업 진행도 빠르고 수익금을 공공에 보태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이 부구청장은 밥을 먹다 말고 곧장 시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짜고짜 이덕수 서울시 행정2부시장부터 만났다. 이 부구청장은 한남뉴타운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에 공공관리자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며 이 부시장을 설득했다. 이 부시장이 "정말 전체를 다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다. 이 부구청장은 "제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하겠습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이 부시장은 바로 김효수 서울시 주택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국 한남뉴타운은 전체 지구에 공공관리자 제도를 시범 적용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대신 4개 구역에 대해서는 초기 사업비용을 서울시와 용산구가 절반씩 부담하기로 했다.
이 부구청장은 "한남뉴타운은 2003년 뉴타운 지정 이후 6년이 흘렀지만 아직 기본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분 쪼개기가 극성을 부리는 등 투기가 판을 쳤고 수십개의 추진위원회(조합의 전 단계)가 난립해 주민 갈등을 조장하고 있어 여기만큼 공공관리가 절실한 곳도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공관리자 제도는 재개발 · 재건축 사업을 할 때 구청장이나 SH공사와 같은 공공기관이 초기 단계부터 직접 개입해 사업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공공관리자 제도는 공공기관이 사업에 대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대신 개발 이익을 가져가는 공영개발과는 다르다. 흔히들 공공관리자 제도가 적용되면 서울시나 구청이 모든 일을 다 해주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 공공관리자는 직접적으로 사업을 추진하지 않는다.
공공관리자라는 표현 그대로 공공기관은 관리 감독만 할 뿐 사업 시행의 주체는 여전히 조합이 맡도록 돼 있다. 따라서 공공관리자 제도는 공영과 민영의 중간 단계인 '준공영'인 셈이다.
이 제도는 그동안 전적으로 민간에 맡겨져 각종 조합 비리,주민 간 갈등,세입자 문제 등으로 얼룩졌던 기존 재개발 · 재건축 방식에 대한 반성에서 나왔다.
현행 재개발 · 재건축은 해당 지역에서 건물이나 토지 등을 소유한 개인들이 모여 조합을 설립하고 이 조합이 사업을 추진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주민들은 재개발 · 재건축에 무지한 경우가 많은 데다 각자의 이해 관계도 서로 다르다 보니 스스로 조합을 구성하기조차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러다 보니 외부에서 개발이익을 노린 '꾼'들이 몰려들어 주민 동의를 받아 조합을 설립하고 집행부로 활동하면서 주민들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시공사와 결탁하거나 공금 횡령 등 배임 행위를 저지르는 사례가 속출했다. 특히 구역 지정도 받지 않은 곳에서 많게는 수십 개의 추진위가 난립해 서로 주민 동의를 받겠다고 경쟁을 벌이는 통에 동의서를 암암리에 사고파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들 추진위는 수십여명의 도우미(OS요원)를 동원하고 시공권을 확보하려는 대형 건설사로부터 수십억원의 자금을 끌어다 쓰기도 했다.
경쟁에서 탈락한 추진위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로 전락한다. 비대위는 각종 소송을 남발해 갈길 바쁜 조합의 발목을 잡는다. 이런 식으로 10년 이상 사업이 지연되는 곳이 부지기수다.
이렇게 되면 무엇보다 재개발 · 재건축의 사업 비용이 크게 높아진다. 이 같은 부담은 결국 조합원이나 나중에 일반 분양을 받는 실수요자에게 넘겨진다. 또 땅값이나 아파트값 상승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공공관리자 제도는 이 같은 폐해를 개선하기 위해 탄생했다. 서울시는 1년여간의 연구 끝에 공공관리자 제도 도입 방안을 지난 6월 공식 발표했다. 공공관리자는 재개발 · 재건축 사업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우기 위한 역할을 수행한다. 즉 조합 설립이나 시공사 선정 등 각종 프로세스를 직접 관리 감독해 투명성을 높이고 사업비를 절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서울시는 제도 도입으로 인해 전용면적 85㎡형 아파트를 기준으로 분양가가 1억원 이상 낮아지고 공사기간도 1~2년가량 단축될 것으로 기대했다.
이 같은 서울시의 구상이 발표되자 재개발 · 재건축 지역의 주민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서울시가 최근 공공관리자 제도에 대한 시민 의견을 접수한 결과 전체 320건 가운데 찬성 의견이 270건(85%)으로 절대 다수를 차지했다.
서울시는 첫 시범지구로 성동구 성수동 일대 성수 전략정비구역(약 66만㎡)을 지정했으며 한남뉴타운을 비롯한 6곳을 추가로 선정했다. 이들 지역에서는 모두 구청장이 공공관리자를 맡아 정비사업자를 선정하고 조합 구성을 위한 준비를 하는 등 재개발 · 재건축 사업 초기 단계부터 적극 개입하게 된다. 선정된 정비업체는 권리관계 조사와 토지 등 소유자 명부 작성,주민설명회 및 주민총회 개최,각종 안내문 제작 발송,추진위원회 구성,동의서 징구 등의 정비사업 초기 실무를 담당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은 서울시 예산에서 100% 지원받는다.
서울시는 공공관리자 제도 법제화와 관련해 현재 국토해양부,국회와의 협의를 거쳐 의원 입법으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지금은 크게 부각되고 있지는 않지만 사실 공공관리자 제도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공공기관이 재개발 · 재건축의 초기 사업에 개입하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한데 특정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시민들의 혈세를 쓰는 게 올바른 일이냐는 지적이다.
하반기에 예정돼 있는 법제화가 제대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불확실성도 존재한다. 당장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서울시의 시뮬레이션 결과가 보편적인 것인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면서 신중한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관리자는 결국 기초지자체가 '관리는 하되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것인데 정부 예산을 쓸 거라면 정부가 차라리 직접 시행까지 하고 책임을 지는 게 사업 진행도 빠르고 수익금을 공공에 보태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