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거쳐야 할 삶의 과정인데도 죽음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건'이다. 부모형제나 지인(知人)의 죽음에,유명인의 부고(訃告)에 깜짝깜짝 놀라는 것도 죽음의 '비(非)일상성' 때문일 것이다. 이같이 비일상적인 죽음을 그는 일상으로 마주한다. 날마다 4,5건의 '죽음'과 대면하며,망자의 몸을 닦고 수의를 입힌다.

장례지도사 신현숙씨(26).하얀 조화가 줄지어 서 있고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오가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그는 잘 웃지 않았다. 표정이 좀 풀어지는가 싶다가도 이내 정돈된 모습으로 돌아갔다. 몸가짐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 보였다. 죽음을 일상으로 대하며 생겨난 평정심일까.

'삶은 구름처럼 왔다가 사라진다/그러나 본래 구름 자체도 존재하지 않았다/삶과 죽음,우리 인생의 오고 감/모두 이와 같다. '

그와 인터뷰하는 탁자 밑 종이에 쓰여져 있던 글귀다. 아직 20대 중반이면서 1000번도 넘게 '죽음'을 마주했던 그에게 삶과 죽음은 무슨 의미일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지난 18일,노무현 전 대통령을 화장했던 수원시 연화장에서 신씨를 만났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은 조금 생소한데 하는 일이 뭔가요.

"장례에 관한 전 과정을 관할한다고 보시면 돼요. 처음에 시신이 들어오면 안치하고 유족들과 장례를 어떻게 치를지 상담합니다. 다음 날 오전에 시신을 씻기고 옷을 입히는 염습(殮襲)을 하고 관에 넣은 뒤 유족과 대면시키는 것까지 직접 하지요. 3일장이 끝나고 발인을 위해 장례식장에서 시신을 모셔 나갈 때도 돕습니다. "


▼아무래도 염습이 가장 힘들 것 같네요. 염습은 어떻게 하나요.

"보통 시신 한 구를 염습하는 데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 걸려요. 오전 9시에 출근해서 평균 5구 정도의 시신을 염습하면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일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게는 하루에 9구를 염습한 적도 있는데 그날은 하루종일 쉬지도 못하고 일해야 했죠.실신한 사람을 업는 게 더 무거운 것처럼 시신의 주요 부위를 닦는 일이 생각보다 힘들어요. 그래서 보통 2인1조로 일해요. 깨끗이 닦고 수의를 입힌 뒤 얼굴에 화색이 돌도록 화장(化粧)까지 하면 작업이 끝나죠."


▼죽은 사람도 화장을 합니까.

"일반인들이 시신을 마주하면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혈색이 없는 데다 표정도 일그러져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따라서 이런 시신을 유족들이 보기에 자연스럽도록 만들어야 해요. 먼저 얼굴을 마사지해 노폐물을 제거하고 얼굴 근육을 풀어줍니다. 생전에 틀니를 쓰시던 분은 입 안에 솜을 넣어서 입모양도 만들어 드리죠.그리고 유족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자연스럽게 화장을 해요. 할머니라면 '곱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만.피부가 너무 건조하면 오일로 마사지를 한 번 더 해요. '돌아가셨다'기보다는 '주무시고 계신다'는 느낌을 주도록 노력해요. "


▼염습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유의하는 점은 뭔가요.

"시신으로부터 감염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에요. 고인은 돌아가셨지만 병이 죽은 것은 아니잖아요. 염습을 하다 보면 시신에서 이물질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작업하는 장례지도사를 해칠 수 있어요. 그래서 일하는 틈틈이 소독과 청소를 병행해요. 시신 한 구를 염습하면 다음 시신이 오기 전에 사용한 기구와 작업대를 전부 소독약으로 닦아요. 예전에는 일이 다 끝나고 한꺼번에 소독하는 경우도 많았다는데 결국 개인 건강은 개인이 알아서 챙겨야 하니까요. "


▼잠깐 듣기에도 힘든 작업일 것 같아요.

"2007년 1월에 입사했는데 처음에는 어깨에서 근육통이 가실 날이 없었어요. 무거운 시신을 들고 다뤄야 하니까요. 그래도 계속 하다 보니 근육량도 늘고 요령도 생겨서 괜찮아요. 체력단련도 따로 하고,스트레칭도 틈틈이 해요. "


▼염습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은데요.

"시신을 닦는데 고인이 소리를 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어요. '으'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느낌이었는데,가슴이 눌리고 공기가 성대로 빠져 나가면서 소리가 난 거예요. 같이 작업하던 선배가 설명해줘서 진정하긴 했지만 정말 놀랐죠.시신이 방귀를 뀌는 경우도 많아요. 닦으면서 배를 누르다 보니 안에 있던 공기가 나오면서 소리가 나는 거죠."


▼시신을 다루면서 삶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을 것 같은데,어떤가요.

"나한테도 내일이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하게 됐어요. 꼭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시신만 접하는 게 아니거든요. 생후 몇 개월 된 아기부터 대학에 갓 입학했거나 제 또래의 시신을 염습하기도 해요. 그래서 내 나이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미루지 말고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죠."


▼생전에 좋은 삶을 사셨겠구나 하는 느낌이 드는 시신도 있습니까.

"시신보다는 유가족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요. 고인을 모셔온 첫날 여기 와서 말씀하시는 것이나 장례식장에서의 태도에서 평소에 어떻게 사셨는지 나타나는 경우가 많아요. 수의나 관을 고를 때 '화장할 건데 대충 싼 걸로 하자'고 말하는 걸 들으면 고인이 생전에 외로우셨겠다는 생각이 들죠.염습을 끝내고 고인을 보시라고 해도 대면조차 거부하는 유족들도 있는데 그럴 땐 많이 씁쓸해요. 반대로 어린 손자까지 와서 엉엉 우는 걸 보면 고인이 잘 사셨겠다는 생각을 하죠.우리 가족도 저래야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


▼저명인사를 염습한 적이 있나요. 그런 분을 대하면 느낌이 다른가요.

"경기도에서 지방자치단체장을 역임했던 분을 염습한 적이 있는데 죽음 앞에서는 다 똑같아요.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고 할까요. "


▼유가족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나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할머니가 오시더니 영정 뒤편의 나무 받침대를 '하트(heart)' 모양으로 해 줄 수 없겠느냐고 하셨어요. 발음도 틀려서 '하이트,하이트' 하시면서요. 네모난 판밖에 없어서 원하시는 대로 해드리지는 못했지만 두 분이 많이 사랑하셨구나 생각했죠."


▼어떻게 장례지도사를 선택하게 됐나요.

"고등학교 때 과외 선생님에게 이런 직업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미국에서는 꽤 중요한 직업이고 대우도 괜찮다고 해서 대학도 이쪽으로 선택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해보니까 미국의 장례문화와 우리 장례문화가 크게 다르고 일의 강도도 차이가 나요. "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

"미국에서는 고인을 관에 눕히고 가족뿐만 아니라 지인들과 대면시키는 의식이 장례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장례지도사들은 의식이 있기 전날 하루종일 피부 톤을 맞추고 시신을 가다듬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하는 일에 집중해요. 이 과정에서 시신을 방부 처리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의식이 없으니까 시신을 빨리 염습하는 일에 집중하게 돼요. 일부 장기를 떼어내고 시신의 피를 모두 뽑아내야 하는 방부 처리 과정 자체가 우리 정서와 맞지 않는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죠."


▼서비스업이지만 고객들에게 "또 오세요"라고 인사할 수 없겠네요.

"그러면 큰 일 나죠.대학 다닐 때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그때 습관을 고치는 것이 힘들었어요. 항상 '고객님'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고인을 고객님이라고 불러서 난처했던 적도 있어요. "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곳에서 화장(火葬)을 했는데 고인을 접할 기회가 있었나요.

"김해에서 장례와 관련된 절차를 마친 데다 서울에서 국민장을 치르고 내려가시는 길에 잠깐 들르셨기 때문에 뵐 기회는 없었어요. 다만 다른 직원들과 함께 제사상 차리는 것을 도왔죠."


▼귀신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다. 죽어서도 구천을 떠도는 영혼이 귀신인데 그런 존재는 없을 것 같아요. 염습을 하다 보면 모든 분들이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돼요. 표정이 편안하신 분은 편안하신 분대로,병환으로 고통스러웠던 분은 그 고통에서 풀려나서 밝고 편안한 곳으로 가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지옥도 없을 것 같아요. "

글=노경목/사진=정동헌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