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이명박 대통령이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구호 아래 내놓은 정책들은 민중주의(populism)의 빛깔을 짙게 띠었다. 오후 10시 이후의 과외 학습 금지,대학생들을 위한 장학금의 조건 완화,기숙형 고교의 기숙사비 경감,교통범칙금의 소득에 따른 차등 부과,음주 운전 초범자들의 사면과 같은 조치들은 모두 민중주의적 정책들이다. 그래서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높다. 민중주의적 정책들은 왜 문제가 되는가?

민중주의는 원래 1890년대 미국에서 활약했던 '민중당(Populist Party)'이 내건 정치적,경제적 이념들을 가리켰다. 민중당은 주로 미국 중서부와 남부의 농민들을 대변했고,은화(銀貨)의 자유 주조(鑄造)와 독점 산업들의 정부 통제를 주요 정책들로 내세웠다. 그 뒤로 민중주의는 차츰 미국 민중당과의 연관에서 벗어나 '일반 인민들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정당의 정치적,경제적 이념들'이라는 보다 일반적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제 민중주의는 특정한 이념이나 정책과 연관되어 쓰여지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들을 대하는 단순주의적(simplistic) 태도와 접근 방식을 가리킨다.

민중주의의 또 하나 두드러진 특질은 그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이기적 태도다. 일반적으로,정책 수립자들은 정책의 타당성을 주로 고려하고 그런 타당성으로 시민들을 설득한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의 개선이다. 민중주의자들은 시민들의 이기심에 대한 호소력이 큰 정책들을 추구한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들의 정치적 이득이다. 즉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조종하는 것이다.

민중주의를 다른 이념들과 구별하는 이런 기준은 예술과 외설물(pornography)을 구별하는 기준과 비슷하다. 예술과 외설물을 구별하는 일은 쉽지 않다. 뒤에 위대한 예술로 평가된 작품들이 외설물로 금지된 경우는 흔하다.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은 널리 알려진 예들이다.

예술은 이 세상의 총체적 진실을 드러내려 애쓴다. 외설물은 단순주의적이다. 예술은 감상자들이 이 세상을 보다 잘 이해하는 일을 도우려 애쓴다. 외설물은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감상자들의 성욕을 의도적으로 자극한다. 즉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와 제작 의도에서 둘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이 대통령의 '서민을 위한 정책'은 거의 다 단순주의적이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사회적 자원을 낭비할 것이다. 음주 운전 초범자들의 사면은 전형적이다.

원래 사면은 범죄를 저질렀다는 혐의를 받은 자가 실은 잘못이 없다는 확신이 선 경우에 허여됐다. 그 뒤로 범법자들을 너그럽게 대하려는 뜻에서 행해졌다. 그러나 사면은 사법 절차에 대한 행정부의 간섭이라는 점과 법의 권위를 약화시킨다는 점에서 본질적 문제들을 안았다. 당연히,사면은 조심스럽게 행해져야 한다. 현 정권은 민중주의적이란 평가를 받은 노무현 정권보다 훨씬 많은 사면을 단행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음주운전 초범자들의 사면이다. 음주운전은 자신과 사회에 큰 재앙을 불러오는 행위다. 당연히,엄하게 벌해서 막아야 한다. 재범을 막을 조치를 전혀 하지 않은 채,초범이라 해서 너그럽게 사면한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그것은 실은 '서민을 위한 정책'도 아니다. 그저 인기가 낮은 대통령에게 정치적으로 이득이 되는 정책일 따름이다.

민중주의적 정책은 단기적으로는 인기를 누린다. 그래서 '서민을 위한 정책'을 내세운 뒤,이 대통령도 인기가 상당히 높아졌다. 문제는 그런 정책들이 불러올 장기적 폐해들이다. 이 대통령은 그런 장기적 폐해들을 줄이는 데 마음을 써야 할 것이다.

복거일 <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