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마친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든다. 아이들은 앞에 앉고 어른들은 뒤에 자리잡는다. 자원봉사자들은 표를 팔고 객석을 정돈하느라 분주하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청소년 500원.문화예술은 대가를 지불하고 즐겨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위해 소액을 받고 있다. 가끔 지갑을 안가져온 사람은 그냥 들여보내고 학생들은 깎아주기도 한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사람들이 매월 한 차례씩 꾸미는 '우리동네 음악회' 풍경이다. 다른 음악회에선 볼 수 없는 푸근함이 가득하다.

주민 자치로 열려온 이 음악회가 오는 29일로 100회째를 맞는다. 인구 6700여명의 면 단위에서 벌써 10년째 열리고 있다는 게 신통하다. 면사무소 별관을 뜯어고친 공연장을 주로 사용하지만 초등학교 강당이나 북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낭만적 장소에서 열리는 경우도 있다. 관객은 보통 150~200명 정도다. 야외무대에서 열릴 때는 500명을 넘기도 한다.

그동안 국악에서부터 합창단,오케스트라까지 국내외의 다양한 공연단을 초청했다. 체코의 프라하 브라스앙상블,아이리시 쳄버오케스트라,모나코 왕실소년합창단,도깨비스톰 등 쟁쟁한 공연단도 다녀갔다. 공연 후 관객과 공연단이 어울려 뒤풀이를 하는 것도 이채롭다. 간단하게 음식을 먹으면서 궁금한 점을 묻거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개런티를 제대로 주지 못하는 만큼 공연단에게 주민들이 만든 도자기나 그림 등을 선물한다. 지난 3월 경기도립국악관현악단 공연에서는 정성이 담긴 식사로 개런티를 대신하기도 했다.

음악회를 이끄는 이들은 '서종사람들'이라는 주민 모임이다. 서울에서 이주해온 문인 화가를 비롯해 농민,자영업자,직장인 등 면면이 다양하다. 운영 자금은 70여명의 회원이 월 1만~2만원씩 내는 후원금과 입장료,양평군청과 경기문화재단의 지원금 등으로 충당한다. 턱없이 모자라지만 부족한 부분은 서종사람들의 열정과 정성으로 메워가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거액을 들여 겉치레로 개최하는 문화행사와 붕어빵식 축제가 넘쳐나고 있다. 이런 마당에 면단위 '시골'에 자생적으로 뿌리내린 동네음악회는 놀랍기까지 하다. '지원은 하되 관심은 없다'는 탁상행정으론 흉내내기 어려운 일이다. 100회 공연은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으로 22일에서 29일로 늦췄다. 오후 7시 서종문화체육공원 야외무대에서 강남심포니와 함께 한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