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로 승부하라] (上) 진화하는 '컴퓨터 그래픽'‥'해운대' '국가대표'로 한국기술력 입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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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억원짜리 슈퍼컴 활용…시속 100km 스키점프 '생생'
기획은 할리우드에 못미쳐
기획은 할리우드에 못미쳐
"실제로 스키점프 경기를 보는 것처럼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CG(컴퓨터그래픽)컷이 많다고 하는데 어느 장면에 쓰였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94big)"
'해운대'와 함께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한국영화 '국가대표'를 본 관객의 소감이다. '해운대'가 쓰나미 CG를 전면에 내세워 호기심을 촉발시켰다면 '국가대표'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앞세우고 CG를 감춘 케이스.관객들은 실제 경기에 나선 듯이 느끼면서 극중 인물들에게 자연스레 동화돼 눈물을 쏟아낸다.
국제 경기장에서 눈이 흩날리는 가운데 시속 100㎞로 점프대를 활강하는 장면 등은 독일 오버스트도르프 스키점프 월드컵 대회 장면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개발한 43억원짜리 슈퍼컴퓨터 '피카소'를 활용해 특수효과 업체 EON이 CG를 입힌 것이다. EON이 고가의 슈퍼컴을 이용한 것은 KISTI가 올해 초부터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중 · 소 벤처의 연구개발을 돕기 위해 '연구장비 공동이용 지원사업'을 실시한 덕분이다.
현재 국내 CG업체는 50개 이상이지만 20명 이상 직원을 거느린 기업은 5~6개 정도.할리우드 CG 시장은 2조원 규모인데 비해 국내 시장은 200억~300억원에 불과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순수 국산기술로 만든 CG가 이처럼 높은 수준을 보여줌으로써 CT(문화기술)의 미래를 밝힌 것이다.
CT의 첨병인 CG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CG가 들어간 판타지와 SF액션물은 세계 영화시장 수입의 80%를 웃돈다. CG를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 '괴물'과 할리우드영화 '킹콩' '스파이더맨'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극장용 영화는 날로 볼거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TV가 커지면서 실사영화들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 CG로 창조한 주인공을 앞세워 제작 중인 영화는 '로보트태권V'.1976년 개봉된 동명 2D 애니메이션을 '트랜스포머' 같은 실사영화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순제작비는 180억원이며 SK텔레콤과 쇼박스가 메인 투자사로 참여했다.
'트랜스포머'가 CG로 로봇의 형태를 변형하는 데 주력했다면 '로보트태권V'는 로봇의 기능을 확장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태권도를 하는 로봇의 관절이 늘어나거나 총탄을 막기 위해 몸체의 갑옷과 장갑을 열었다 닫는 식이다. 태권V와 악당 로봇들은 서울시내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서 싸우며 63빌딩이 무너지는 장면도 있다. 센서를 장착한 배우가 실제 태권도를 펼치는 모습을 촬영한 뒤 CG로 대체하는 '모션캡처' 방식을 사용할 예정.
할리우드에서도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CG 캐릭터들을 대거 내세운 '아바타'를 촬영 중이다. '로보트태권V'를 제작 중인 신철 로보트태권브이㈜ 사장은 "애니메이션처럼 CG로 창조한 배우들이 실제 배우만큼 인기를 얻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CG로 창조한 주인공들은 캐릭터 상품 등 부가판권 사업에도 용이하다. 로보트태권브이㈜는 지난 4월 태권V 피규어 7000개를 생산해 전량 판매했다. 최근에는 초합금으로 만든 피규어 판매에 들어갔다. 개당 14만5000원짜리인 이 상품은 어린이처럼 액션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키덜트족'들을 겨냥하고 있다.
'로보트태권V' 제작과 함께 스턴트 로봇을 제작하는 '애니메트로닉스' 기술도 떠오르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일렉트로닉스의 합성어로 근접촬영에 약한 CG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태권V의 표정 등을 클로즈업하기 위해 스턴트 로봇을 실제 제작하는 것이다.
일반 실사영화에서 사용되는 스턴트로봇은 화재와 추락 장면 등에 필요한 마네킹에다 사람 피부 같은 실리콘 외피를 입히고 체내에 전자장치를 부착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다. 한국 영화 '식객'에서 자른 손목이 꿈틀하는 장면이나 공포영화 'GOP'에서 폭약이 터질 때 신체가 분해되는 모습 등에 사용됐다.
노르웨이산 스턴트 로봇은 개당 1억원을 웃돌지만 최근 국내 업체 엔티리서치가 개당 3000만원 수준으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스턴트로봇은 영상보다 의료용 시장이 더 크다. 김경환 엔티리서치 대표는 "국내에서 심폐소생 응급조치를 교육하는 데 사용됐던 구체관절인형 대체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다"며 "구체관절인형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지만 애니메트로닉스 인형은 사람처럼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CG산업이 성장하려면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한국 업체들 기술은 할리우드의 85% 수준까지 따라 왔지만 기획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가령 싱가포르 정부는 3억달러 규모의 영상펀드를 조성해 싱가포르에서 CG작업을 하면 영화에도 투자해 준다.
할리우드영화 '포비든킹덤'의 CG를 맡았던 매크로그래프의 이인호 대표는 "할리우드 영화의 CG 수주 경쟁에서 최근 싱가포르 업체에 졌다"며 "기술은 우리가 앞섰지만 싱가포르 정부의 지원책에서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
'해운대'와 함께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한국영화 '국가대표'를 본 관객의 소감이다. '해운대'가 쓰나미 CG를 전면에 내세워 호기심을 촉발시켰다면 '국가대표'는 감동적인 드라마를 앞세우고 CG를 감춘 케이스.관객들은 실제 경기에 나선 듯이 느끼면서 극중 인물들에게 자연스레 동화돼 눈물을 쏟아낸다.
국제 경기장에서 눈이 흩날리는 가운데 시속 100㎞로 점프대를 활강하는 장면 등은 독일 오버스트도르프 스키점프 월드컵 대회 장면에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개발한 43억원짜리 슈퍼컴퓨터 '피카소'를 활용해 특수효과 업체 EON이 CG를 입힌 것이다. EON이 고가의 슈퍼컴을 이용한 것은 KISTI가 올해 초부터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중 · 소 벤처의 연구개발을 돕기 위해 '연구장비 공동이용 지원사업'을 실시한 덕분이다.
현재 국내 CG업체는 50개 이상이지만 20명 이상 직원을 거느린 기업은 5~6개 정도.할리우드 CG 시장은 2조원 규모인데 비해 국내 시장은 200억~300억원에 불과하다. 열악한 환경에서 순수 국산기술로 만든 CG가 이처럼 높은 수준을 보여줌으로써 CT(문화기술)의 미래를 밝힌 것이다.
CT의 첨병인 CG는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CG가 들어간 판타지와 SF액션물은 세계 영화시장 수입의 80%를 웃돈다. CG를 앞세워 흥행에 성공한 한국영화 '괴물'과 할리우드영화 '킹콩' '스파이더맨' 등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극장용 영화는 날로 볼거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TV가 커지면서 실사영화들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국내에서 CG로 창조한 주인공을 앞세워 제작 중인 영화는 '로보트태권V'.1976년 개봉된 동명 2D 애니메이션을 '트랜스포머' 같은 실사영화로 만드는 프로젝트다. 순제작비는 180억원이며 SK텔레콤과 쇼박스가 메인 투자사로 참여했다.
'트랜스포머'가 CG로 로봇의 형태를 변형하는 데 주력했다면 '로보트태권V'는 로봇의 기능을 확장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태권도를 하는 로봇의 관절이 늘어나거나 총탄을 막기 위해 몸체의 갑옷과 장갑을 열었다 닫는 식이다. 태권V와 악당 로봇들은 서울시내 광화문과 여의도 등에서 싸우며 63빌딩이 무너지는 장면도 있다. 센서를 장착한 배우가 실제 태권도를 펼치는 모습을 촬영한 뒤 CG로 대체하는 '모션캡처' 방식을 사용할 예정.
할리우드에서도 '타이타닉'의 제임스 카메룬 감독이 CG 캐릭터들을 대거 내세운 '아바타'를 촬영 중이다. '로보트태권V'를 제작 중인 신철 로보트태권브이㈜ 사장은 "애니메이션처럼 CG로 창조한 배우들이 실제 배우만큼 인기를 얻는 날이 곧 올 것"이라고 말했다.
CG로 창조한 주인공들은 캐릭터 상품 등 부가판권 사업에도 용이하다. 로보트태권브이㈜는 지난 4월 태권V 피규어 7000개를 생산해 전량 판매했다. 최근에는 초합금으로 만든 피규어 판매에 들어갔다. 개당 14만5000원짜리인 이 상품은 어린이처럼 액션피규어 등을 수집하는 '키덜트족'들을 겨냥하고 있다.
'로보트태권V' 제작과 함께 스턴트 로봇을 제작하는 '애니메트로닉스' 기술도 떠오르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일렉트로닉스의 합성어로 근접촬영에 약한 CG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태권V의 표정 등을 클로즈업하기 위해 스턴트 로봇을 실제 제작하는 것이다.
일반 실사영화에서 사용되는 스턴트로봇은 화재와 추락 장면 등에 필요한 마네킹에다 사람 피부 같은 실리콘 외피를 입히고 체내에 전자장치를 부착해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든다. 한국 영화 '식객'에서 자른 손목이 꿈틀하는 장면이나 공포영화 'GOP'에서 폭약이 터질 때 신체가 분해되는 모습 등에 사용됐다.
노르웨이산 스턴트 로봇은 개당 1억원을 웃돌지만 최근 국내 업체 엔티리서치가 개당 3000만원 수준으로 국산화에 성공했다. 스턴트로봇은 영상보다 의료용 시장이 더 크다. 김경환 엔티리서치 대표는 "국내에서 심폐소생 응급조치를 교육하는 데 사용됐던 구체관절인형 대체 수요가 급성장하고 있다"며 "구체관절인형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지만 애니메트로닉스 인형은 사람처럼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CG산업이 성장하려면 넘어야 할 장벽도 많다. 한국 업체들 기술은 할리우드의 85% 수준까지 따라 왔지만 기획능력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가령 싱가포르 정부는 3억달러 규모의 영상펀드를 조성해 싱가포르에서 CG작업을 하면 영화에도 투자해 준다.
할리우드영화 '포비든킹덤'의 CG를 맡았던 매크로그래프의 이인호 대표는 "할리우드 영화의 CG 수주 경쟁에서 최근 싱가포르 업체에 졌다"며 "기술은 우리가 앞섰지만 싱가포르 정부의 지원책에서 밀린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