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영국의 상품시장 감독 당국이 에너지시장 규제에 공조하기로 합의했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인 배럴당 147달러 선까지 치솟는 등 급등 요인 중 하나인 투기적 거래를 잡으려면 양국 간 공조가 필수적이란 판단에서다.

20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와 영 금융감독청(FSA)은 상대국 거래소를 상호 방문하고 감독할 수 있는 등의 공동 합의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CFTC와 FSA는 상대방 국가의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대한 집행 및 감사 추적 자료에 직접 접근할 수 있으며 거래에 대한 규제와 강제조치 등도 공유하게 된다. 또 두 기관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긴급조치'에 대한 큰 틀을 마련했다. 이번 합의 사항을 또 다른 주요 원자재 선물거래소인 런던 국제거래소(ICE)에서 이뤄진 계약 가운데 CFTC 감독 아래 있는 미국의 거래소와 연계된 계약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게리 겐슬러 CFTC 회장은 "이번 합의로 CFTC는 에너지 시장을 효과적으로 감독하기 위한 필수적인 수단을 갖게 됐다"며 "시장 조작이 사라지도록 모든 수단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 영 감독 당국이 공조에 합의한 것은 미국에서만 투기적 거래를 규제해서는 뛰는 유가를 잡을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예를 들어 대표적 국제유가 벤치마크인 미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뉴욕상품거래소(NYMEX)에서 주로 거래되고 있지만 런던의 ICE에서도 일부 거래되고 있다. 따라서 미 CFTC가 미국에서 규제를 강화한다고 해도 투기세력들이 런던으로 옮겨서 거래를 한다면 유가 급등을 막을 수 없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번 합의로 두 기관은 양국의 거래소에서 이뤄지는 거래에 대해 보다 많은 정보를 확보,투기세력을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게 됐다. WTI는 뉴욕 NYMEX에서,북해산 브렌트유는 런던 ICE에서 거의 대부분의 선물거래가 이뤄진다.

CFTC는 이와 함께 미국 선물시장에서 투기적 거래를 규제하기 위해 계약 규모를 엄격히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CFTC와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다음 달 2~3일 청문회에서 계약 규모 제한과 더불어 시장 조작 및 내부자 거래 등을 방지할 수 있는 새로운 규제안에 대해 발표할 예정이다. 늦어도 11월까지는 구체안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CFTC는 유가 급등의 원인으로 헤지펀드 등 투기세력을 꼽아왔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유가가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지난해 7월의 금융투자자 선물 계약 투자는 약 3000억달러로 알려졌다. 이는 유가 폭등 이전인 2006년 1월보다 4배나 증가한 것으로 투기가 유가 폭등의 원인임을 나타내는 근거로 제시됐다.

암리타 센 바클레이즈 캐피탈 애널리스트는 "이번 조치는 거래 시스템의 투명성이 개선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평가했다. 코메르츠방크는 최근 규제 강화 움직임에 따라 내년 평균 유가 전망치를 배럴당 75달러에서 55달러로 낮췄다.

한편 CFTC는 지난 19일 2개 자산운용사에 대해 옥수수 대두 밀 등 농산물 거래에 적용해왔던 포지션(매매계약한도) 규제 예외조항을 철회,곡물시장 규제에도 본격 착수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