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조문단이 21일 이틀간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함에 따라 남북 당국자 간 어느 정도 수위에서 만남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남북은 지난해 2월 말 이후 6자회담 틀안에서 만나 양자 협의를 한 적은 있지만 실질적인 고위급 대화는 1년6개월 동안 끊겨왔다. 때문에 이들이 우리 정부의 누구와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느냐는 향후 남북 관계를 점치는 가늠자가 될 수 있다. 특히 조문단이 22일 오후 서울을 떠날 때까지 청와대 방문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다.

일단 홍양호 통일부 차관이 공항에서 이들을 영접했다는 점에서 당국자 간 접촉은 이뤄진 셈이다. 우리 정부 직제로 치면 장관급 이상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 비서와 통일부 장관의 카운터파트로 볼 수 있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으로 구성된 조문단의 면면은 대화의 전제조건인 '급(級)'과 '내용'을 모두 갖췄다는 게 중평이다.

우리 당국과의 회동 가능성을 염두에 둔 포석이란 분석이 적지 않다. 우리 정부도 어떻게든 경색 국면을 타파하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 · 15 경축사'에서 "언제,어떠한 수준에서든 남북 간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음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했던 만큼 이번에 고위급 간 만남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적어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 선에서 회동할 가능성은 크다는 관측이다.

다만 청와대는 이 대통령과 조문단의 면담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으나 조심스러운 태도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날 "북한 조문단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설립한) 아태평화재단이 초청의 주최"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이어 "북한 조문단에서 만나자는 얘기가 있으면 그때 가서 판단할 문제"라며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친서나 메시지를 갖고 왔으면 모르지만 우리가 먼저 만나자고 할 이유는 없고 회동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외국 조문단으로 정상들이 오면 대통령이 만나는 게 격에 맞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고 북한이 만나자는 요청이 있는데 자를 이유는 없다"면서 "열린 자세로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할 것이며 비밀회동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문단과 이 대통령의 회동성사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이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북한 조문단이 청와대를 예방할 뜻이 있는지,어떤 대화를 나누길 원하는지 등을 파악하는 게 우선이라는 얘기다.

청와대 관계자가 "모양새도 갖춰야 한다"고 말한 것은 의례적인 만남이라든가 북한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듣는 자리가 돼선 곤란하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청와대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방북,이번 조문단 방한 과정에서 북한이 정부를 배제한 이른바 '통민봉관(通民封官)'전술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다.

홍영식 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