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T로 승부하라] (中) 디지털 콘텐츠의 마력‥미술관벽에 아트쇼… 첨단 光學 입은 뮤지컬
과학자 아이작 뉴턴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서 멀리 볼 수 있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뉴턴은 과학 분야에서 자신이 거둔 성과가 이전 과학자들의 업적을 딛고 나올 수 있었다는 뜻에서 이런 말을 했지만,예술 분야에서도 이 말은 낯설지 않다. 예술이 예술가의 손끝에서만 나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현대 예술은 CT(문화기술)라는 토양 위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진화 · 발전한다. CT가 '거인의 어깨' 역할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술계에서 CT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분야는 디지털 아트다. 비디오 아트,컴퓨터 아트,미디어 아트 등 첨단 전자기술과 접목된 디지털 아트는 급속히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첨단과학과 예술이 만나면서 예술가의 표현 방식을 다양화했을 뿐 아니라,관객들과의 소통 공간을 확장하고 있는 것.오스트리아의 디지털 아트 페스티벌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디렉터인 게르프리트 시토커는 "디지털 아트는 차세대 성장산업으로 일컬어지는 CT의 핵심 분야 중 하나"라며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 예술로 승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19일까지 밤마다 서울시립미술관 본관 외벽을 거대한 '캔버스' 삼아 미디어아트 그룹 뮌(Mioon)이 펼치는 '라이트 월(Light Wall)' 전은 빛을 이용한 '매핑(mapping)' 기술이 예술과 결합한 현장이다. 눈 내리는 한겨울 어린 남매가 귀여운 백곰의 도움으로 세계여행을 떠나는 동화를 이미지로 보여주거나 그리스 · 로마시대의 건축물 기행 등을 보여주는 이 전시는 CT가 개척한 새로운 문화장르다.

인천도시축전에서 야간 멀티미디어 쇼와 함께 주 행사장(디지털아트관)에서 펼쳐지고 있는 '2009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NDAF · 10월25일까지)에서는 12개국 영상 설치 작가의 작품 100여점이 관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있다. 인천 송도 투모로우 씨티 큰울림 광장 15m 상공에는 밤마다 세로 6m · 가로 28m의 초대형 3D입체 스크린이 깜짝 등장해 볼거리를 제공한다. 전설 속 인물들과 승천하는 용,뛰어노는 어린이 등을 통해 인천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한다. 특수 제작된 반투명 그물형 스크린에 고해상도의 프로젝터를 이용해 동영상을 투사하는 원리다. 그러나 그물형 스크린은 어두운 곳에서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마치 허공에서 사람과 사물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 작가 짐 캠벨의 '그랜드센트럴역 2009'는 뉴욕 맨해튼 그랜드센트럴 역의 복잡하고 혼란스런 도시 구성원들의 모습을 3200개의 LED로 구현했다. 관람객이 보내는 문자 메시지로 영상 속 가상 인물의 표정을 바꾸는 린 허시만의 작품 등은 한 방향으로 감상을 강요하던 기존 미술과 달리 관람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CT가 쌍방향 예술의 문을 활짝 열어제친 셈이다.

공연 분야에선 뮤지컬이 발빠르게 CT를 도입해 관객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과거 브로드웨이 뮤지컬 '캣츠'가 정교한 분장과 의상으로 관심을 모았고,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관객 머리 위를 휘젓고 날아다니는 거대한 샹들리에로 깊은 인상을 남기는 등 뛰어난 볼거리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다. CT를 통해 '상상하는 것' 이상을 보여주고 있다. 일례로 뮤지컬 '미스 사이공'의 하이라이트 장면인 헬리콥터 신의 경우 예전에는 실제 헬리콥터가 등장했지만 이제는 3D 입체영상 기술을 활용한 가상 헬리콥터로 대체됐다.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의 넌버벌 퍼포먼스 '블루맨그룹'도 영상을 이용한 무대효과를 선보여 눈길을 끈다.

관객 20만명을 동원하며 평균 객석 점유율 90%(유 · 무료 합계) 가까이 기록한 우리 뮤지컬 '드림걸즈'는 CT와 무대가 결합할 때 나오는 시너지 효과가 무한대임을 보여줬다. 무대에는 아날로그 설비 대신 조명과 가로 2m · 세로 6m 크기의 거대한 LED 패널 5개가 설치됐다. '드림걸즈'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로 꼽히는 1막 'Steppin to the bad side' 장면에서 LED 패널들은 살아움직였다. 패널에 남성 군무가 다각도로 비치면서 실제 배우보다 몇 배 많은 인원이 춤을 추는 듯한 효과로 화려함을 더했다. 공연 내내 사전 녹화된 영상 및 현장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패널과 무빙라이트 88대,컬러 스크롤러 100여대,기본조명 350대 등 총 540개 조명기기의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져 감탄을 자아내기도 했는데,이는 '통합 쇼컨트롤 시스템'의 위력이다. 지금까지 각각 조정됐던 조명,영상,음향,무대장치 변환 등을 100분의 1초까지 중앙 컴퓨터로 한번에 제어하는 이 시스템은 영상과 대사,노래가 어긋나는 무대 사고 확률을 줄여 공연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오디뮤지컬 컴퍼니 측은 "아날로그 방법으로 혁신적인 무대를 꾸미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많은 공연에서 디지털 기술이 도입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김경갑/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