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첫 항고심…법원, 은행 손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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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가처분 기각…"기업이 환율 급변 위험 감수한것"
1심서 일부기업 승소 논거 뒤집혀…관련 소송에 영향 클듯
1심서 일부기업 승소 논거 뒤집혀…관련 소송에 영향 클듯
기업이 은행의 환헤지 옵션 상품인 키코(KIKO)에 가입했다 예상키 어려운 환율 급등으로 손실을 봤어도 계약을 무효화할 수 없다는 첫 2심(고등법원) 결정이 나왔다. 그동안 1심에서 일부 키코 가입 기업의 손을 들어 준 근거가 된 이른바 '사정 변경'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번 결정은 현재 고법에 계류 중인 나머지 20여건의 관련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기업이 환율 급등 가능성 배제 안 해'
서울고법 민사40부(수석부장판사 이성보)는 코스닥 상장 기업인 KPX화인케미칼이 신한은행과 씨티은행,SC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옵션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계약 자체가 불공정하고 △은행의 사기 또는 기업의 착오가 있었으며 △사정 변경 등에 따라 계약 해지권이 인정돼야 하고 △은행이 고객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KPX화인케미칼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사정 변경에 대한 판단이다. 기존 키코 관련 가처분 신청에서 1심 재판부는 환율 급등으로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계약 후 현저히 변경됐기 때문에 기존 계약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거로 일부 기업의 손을 들어 줬다. 사정 변경은 브라질 등 해외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파격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졌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계약 당시 기업과 은행이 환율이 급격히 변동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기업이 위험을 스스로 감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사정 변경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2심 재판부는 다른 법적 논쟁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보였다. "환율 변동에 따른 은행의 손실은 제한돼 있지만 기업의 손실은 무제한이어서 불공정하다"는 KPX화인케미칼의 주장에 대해 "계약 내용이 환율 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고려해 은행과 기업의 기대 이익을 대등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환율 변동 가능성에 대한 은행의 사기 및 기업 착오 여부에 대해서도 "기업이 계약의 내용과 대체적 구조를 이해한 점이 소명된다"고 밝혔다.
◆일률적 기준 적용은 힘들 듯
이번 결정은 고법에 계류 중인 20여건의 다른 가처분 신청 결정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황진구 서울고법 공보판사는 "사정 변경 등에 따른 계약 해지권 인정과 계약 내용의 불공정성 등에 대해 판단한 고법의 첫 결정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손을 들어 줬던 기존 1심 결정들이 2심에서 뒤집어질지 주목된다. 그렇다고 2심에서 은행 측의 승소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2심 재판부가 이번 결정에 몇 가지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우선 사정 변경에 대해서는 '채권자는 외환거래 규모가 큰 수출 기업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외환 거래가 적은 기업은 환율 급등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 사정 변경이 적용될 가능성을 열어 둔 셈이다. 또 기업 착오 및 은행 사기 여부에 대해서도 "은행이 환율 하락에 대한 단정적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는다"고 밝혀 다른 사례에서는 이 점이 소명되면 기업의 주장이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이라도 예측 범위에 있다면 당사자 계약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라며 "다만 은행이 얼마나 의무를 다했는지는 사안마다 달라 일률적 적용은 미지수"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법원 결정은 키코 계약을 판매한 시중 은행에 대해 불완전 판매 등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금감원의 제재 결정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기업이 환율 급등 가능성 배제 안 해'
서울고법 민사40부(수석부장판사 이성보)는 코스닥 상장 기업인 KPX화인케미칼이 신한은행과 씨티은행,SC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옵션계약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계약 자체가 불공정하고 △은행의 사기 또는 기업의 착오가 있었으며 △사정 변경 등에 따라 계약 해지권이 인정돼야 하고 △은행이 고객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KPX화인케미칼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사정 변경에 대한 판단이다. 기존 키코 관련 가처분 신청에서 1심 재판부는 환율 급등으로 계약의 기초가 된 객관적 사정이 계약 후 현저히 변경됐기 때문에 기존 계약의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는 논거로 일부 기업의 손을 들어 줬다. 사정 변경은 브라질 등 해외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파격적인 판결로 받아들여졌다.
2심 재판부는 그러나 "계약 당시 기업과 은행이 환율이 급격히 변동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했다고 볼 수 없다"면서 "기업이 위험을 스스로 감수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사정 변경을 정면으로 부인했다.
2심 재판부는 다른 법적 논쟁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내보였다. "환율 변동에 따른 은행의 손실은 제한돼 있지만 기업의 손실은 무제한이어서 불공정하다"는 KPX화인케미칼의 주장에 대해 "계약 내용이 환율 변동의 확률적 분포를 고려해 은행과 기업의 기대 이익을 대등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환율 변동 가능성에 대한 은행의 사기 및 기업 착오 여부에 대해서도 "기업이 계약의 내용과 대체적 구조를 이해한 점이 소명된다"고 밝혔다.
◆일률적 기준 적용은 힘들 듯
이번 결정은 고법에 계류 중인 20여건의 다른 가처분 신청 결정에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황진구 서울고법 공보판사는 "사정 변경 등에 따른 계약 해지권 인정과 계약 내용의 불공정성 등에 대해 판단한 고법의 첫 결정이어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손을 들어 줬던 기존 1심 결정들이 2심에서 뒤집어질지 주목된다. 그렇다고 2심에서 은행 측의 승소를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2심 재판부가 이번 결정에 몇 가지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우선 사정 변경에 대해서는 '채권자는 외환거래 규모가 큰 수출 기업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이라는 전제를 깔았다. 외환 거래가 적은 기업은 환율 급등 가능성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 사정 변경이 적용될 가능성을 열어 둔 셈이다. 또 기업 착오 및 은행 사기 여부에 대해서도 "은행이 환율 하락에 대한 단정적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이 소명되지 않는다"고 밝혀 다른 사례에서는 이 점이 소명되면 기업의 주장이 인정될 가능성도 있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번 결정은 천재지변과 같은 상황이라도 예측 범위에 있다면 당사자 계약은 인정받아야 한다는 취지"라며 "다만 은행이 얼마나 의무를 다했는지는 사안마다 달라 일률적 적용은 미지수"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법원 결정은 키코 계약을 판매한 시중 은행에 대해 불완전 판매 등을 이유로 금융감독원이 징계 절차를 밟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금감원의 제재 결정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