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몰아친 불황 속에서도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낸 국내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다. 삼보컴퓨터와 팬택,대우일렉트로닉스가 주인공들이다. 한때 법정관리나 기업구조개선작업 등에 들어갔던 이들 기업은 속도,틈새시장 공략,과감한 구조조정으로 재기의 길을 닦는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삼보컴ㆍ팬택ㆍ대우일렉, '회생 코드' 찾았다
◆삼보,"속도로 승부하라"

삼보컴퓨터는 지난 상반기 매출 2120억원에 영업이익 57억원을 내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23% 늘고 영업이익은 226%나 늘었다. 2005년 경영 악화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 회사를 셋톱박스 회사 셀런의 창업자인 김영민 부회장이 인수한 것은 2007년 말.김 부회장은 시장 환경에 맞춰 신제품을 1~2개월 간격으로 빠르게 내놓는 '속도경영'에 들어갔다.

타깃은 미국 시장이었다. 델과 HP 등 대형 PC업체들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 '에버라텍'이라는 독자 브랜드를 내놓으면서 시장을 파고들었다. PC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잇는 일체형 디자인 제품과 모니터가 접히는 PC 등을 빠르게 내놓으면서 실적을 올렸다. 최근에는 친환경을 강조하는 그린 IT(정보기술) 제품을 내놨다.

지난 3월에는 LED(발광 다이오드)를 채용한 노트북 '에버라텍 스타' 등을 내놓으면서 상반기중 국내 시장 매출도 28% 높였다. 회사 관계자는 "PC 사업에 전문적으로 역량을 집중해 의사결정 속도를 빨리함으로써 회사 수익구조를 개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팬택,틈새시장 공략으로 재기

박병엽 팬택계열(팬택,팬택앤큐리텔) 부회장은 최근 미국 퀄컴을 우군으로 맞이했다. 팬택 지분 12.55%와 팬택앤큐리텔의 12.17%를 퀄컴이 보유하게 되면서 2대 주주로 참여하게 된 것.팬택계열이 지불하지 못한 휴대폰용 칩세트와 기술사용료 대신 지분을 넘겨주는 방식으로 퀄컴을 맞아들이면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퀄컴이 팬택에 우호적인 태도로 바뀔 수 있었던 것은 팬택의 특화전략 덕분이었다.

이 회사는 2007년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틈새시장을 공략대상으로 삼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시장인 미국 시장을 노려 고급 스마트폰 '팬택 듀오'를 내놓고,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AT&T 등에 휴대폰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시장 개척에 나선 것.팬택은 이 같은 미국향(向) 제품을 속속 내놓으면서 올 상반기 매출 4676억원,영업이익 280억원을 거뒀다.

◆구조조정 성공한 대우일렉트로닉스

1999년 대우그룹 공중분해 여파로 기업구조개선작업에 들어간 대우일렉은 2006년부터 채권단 주도로 세 차례에 걸쳐 새 주인 찾기에 나섰지만 잇달아 실패했다. 국내외 투자자들이 이 회사의 장기 회생 가능성을 낮게 본 탓이었다. 대우일렉은 지난 3월 "회사를 살려야 한다"며 노조를 설득,전체 직원의 40%인 1000여명을 3개월간 재택근무에 이어 정리해고하는데 합의했다.

대우일렉은 이어 TV사업과 에어컨사업 등 4개 사업을 매각하는 등 사업 구조조정을 마치고 냉장고와 세탁기를 주력으로 하는 백색가전 전문회사로 재탄생했다. 올초만 해도 2500여명에 달했던 임직원 숫자가 정리해고와 자연감소 등을 반영,1300여명으로 줄어들자 남은 임직원들은 이를 악물었다. 세제가 자동으로 투입되는 드럼업 세탁기,말하는 복합오븐,화장품 보관기능이 갖춰진 양문형 냉장고 등 실용적인 신제품을 내놓으면서 세몰이에 들어갔다.

지난 7월부터는 해외 시장 공략에도 나서 중남미,중동,러시아를 돌면서 현지 바이어 초청 행사를 열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지난 상반기 매출 5060억원,영업이익 222억원의 흑자성적표를 냈다. 회사 관계자는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기반으로 세계 각 시장별로 특화 전략을 구사해 올해 매출 1조2000억원,영업이익 400억원 달성에 도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예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