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 레오폴드 에어의 6인승 세스나 210 경비행기에 몸을 실은 지 네 시간 가까이 됐다.

서호주 북부의 오지 킴벌리 지역을 향해 브룸 경비행장을 이륙한 시간은 오전 6시30분.1885년 크리스마스에 찰리 홀이란 이가 793.8g의 금덩어리를 발견,서호주의 골드 러시를 촉발시킨 홀스 크리크까지 꼬박 2시간반이 걸렸다. 홀스 크리크에서 급유를 한 뒤 푸눌룰루 국립공원 벙글벙글 지역 근방의 벨번 경비행장을 향해 1시간을 더 날았으니 단조로운 프로펠러 엔진 소음에 저절로 눈이 감길 만도 하다. 그러나 경비행기의 움직임은 아무리 경미한 것이더라도 몸에 그대로 전달되는 법.고도를 낮추고 오른쪽으로 크게 선회하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니 드디어 착륙 직전인 게 틀림없다.



Take1 물과 바람의 아름다운 조화

본능적으로 자세를 바로잡은 뒤 가까스로 치켜뜬 두 눈에 들어오는 창 밖 풍경에 정신이 번쩍 든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울쑥불쑥 무리져 있는 수많은 바위기둥이 영화에서 본 외계 행성의 깊은 계곡 표면 같아 신기하다. 나스카 라인 같은 붉고 곧은 도로,피츠이 크로싱 근방의 장대한 게이키 협곡,킹 레오폴드산맥 아래 사막에 터를 잡은 아보리진 마을,바짝 말라버린 사행천의 흐름 등 경비행기 항로 주변에 스쳤던 여러 풍경은 이미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벙글벙글 지역의 바위기둥 풍경이 형태와 크기에서 그 모두를 압도하는 것이다.

벙글벙글 지역은 푸눌룰루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벙글벙글 지역의 5배가 넘는 2400㎢ 규모의 푸눌룰루 국립공원은 한반도의 두 배 크기에 육박하는 서호주 북부의 아웃백 킴벌리 지역에 산재한 국립공원 중 하나다. 200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됐다.

아보리진 말로 모래바위를 뜻하는 푸눌룰루 국립공원은 그 한 부분인 벙글벙글이란 이름으로 더 낯익다. 싱글벙글 웃는 모습을 연상시키는데 사실 우리 말과는 일절 관계 없고 그 지역에 자생하는 '번들번들'이란 식물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Take2 아보리진 문화와 협곡 트레킹

벙글벙글 지역의 바위 모습은 정말 희한하다.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크게 떠낸 바닐라 아이스크림콘에 빨강 시럽과 검정 초콜릿 띠를 둘러 장식한 것 같다. 꼭대기는 날카롭지 않고 둥그스름한 게 편안해 보인다. 벙글벙글 형성의 기초는 3억6000만년 전에 놓였다. 당시 이 일대는 바닷물이 들어찼으며 강물에 쓸려온 토사가 쌓여 사암과 역암층이 형성됐다. 이후 지각변동으로 바닷물이 빠지고 퇴적층이 융기하면서 2000만년에 걸친 침식작용이 진행된 결과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빨갛고 검은 띠는 어떻게 두르게 됐을까? 이스턴 킴벌리 투어스의 베테랑 가이드 제스는 '산화'와 '시아노박테리아' 두 단어로 설명한다. 빨간 부분은 사암 속의 철 성분이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산화한 것이고 검은 띠는 시아노박테리아(남조류)가 붙어 화석화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시아노박테리아는 35억년이 된 바위에서도 발견되는 최초의 단세포 유기체로 알려져 있다. 이 시아노박테리아의 검의 띠와 사암이 산화해 껍질처럼 딱딱해진 표면이 사암기둥을 무너져내리지 않게 보호하고 있다. 실제로 2~3㎜밖에 안 되는 껍데기 안에는 작은 충격에도 부서지는 하얀 사암이 숨어 있다.

벙글벙글 지역에는 관광객을 위한 트레킹 코스가 조성돼 있다. 대표적인 게 캐서드럴 협곡과 피캐니니 크리크다. 캐서드럴 협곡으로 가는 길에 살짝 빠져 들어갔다 나오는 700m 길이의 돔스 트레일도 있다. 돔스 트레일의 끝에서는 아보리진의 암각화를 확인할 수 있다. 까만 부메랑 형태의 암각화와 손바닥을 대고 찍은 듯 선명한 손바닥 암각화도 있다. 캐서드럴 고지는 5㎞ 코스다. 한나절 트레킹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코스 끝에서 마주하는 천연의 원형극장에 입이 딱 벌어진다. 해변에서나 볼 듯한 모래 위에서도 마르지 않는 웅덩이의 수면에 반영된 붉은빛 협곡과 새파란 하늘이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벙글벙글(서호주)=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서호주는 호주에서 제일 큰 주다. 호주대륙 서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인구는 200만명.대부분의 도시가 인도양을 바라보는 해안가에 자리해 있다. 도시 경계 바깥의 내륙 쪽은 호주의 오지인 아웃백이 펼쳐져 있다. 주도는 150만명이 사는 퍼스.한국보다 1시간 늦다. 현금 매입 기준 1호주달러에 1051원 선.

벙글벙글이 있는 푸눌룰루 국립공원은 서부 해안의 브룸이나 북부 쿠누누라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들어가는 게 보통이다. 브룸에서 출발할 경우 피츠로이 크로싱이나 홀스 크리크를 경유해 벙글벙글 지역의 벨번 비행장으로 들어간다. 기착지에서의 주유 및 휴식시간을 제외한 비행시간은 3시간반 정도다. 벙글벙글 현지에서는 벨번 크리크와 쿠라종 캠프 사이트에서만 캠핑이 가능하다. 푸눌룰루 국립공원은 여행하기 좋은 계절인 4월에서 11월까지 오픈한다.

서울에서 브룸이나 쿠누누라까지 직항편은 없다. 캐세이패시픽항공(02-311-2800)을 타고 홍콩을 경유해 퍼스로 들어간 다음 브룸 또는 쿠누누라행 국내선을 탄다. 캐세이패시픽항공의 서울~홍콩~퍼스 연결편이 매일 다닌다. 브룸에서 벙글벙글까지 킹 레오폴드 에어(www.kingleopoldair.com.au)를 이용한다. 벙글벙글 현지투어는 이스트 킴벌리 투어스(www.eastkimberlytours.com.au) 등이 안내한다.

서호주정부관광청(02)6351-5156,/ kr.westernaustral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