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마천루에 찔려 하늘이 줄줄 새는 뉴욕,파리,베를린,런던,서울.그 이면에는 홈리스나 부랑자들이 사는 음침한 지하철 터널과 폐쇄된 공원,버려진 공장,인적 없는 발전소 등 거대 도시의 그늘이 존재한다. 황달이 든 가로등처럼 꾸벅이는 도시의 음지에 벌거벗고 들어가 자신의 나신을 카메라 렌즈로 잡아낸 작가가 있다.

서울 신사동 갤러리현대 강남점에서 25일부터 다음 달 13일까지 작품전을 펼치는 신예 사진 작가 김미루씨(28).그는 "뉴욕 등 대도시의 후미진 곳에서 알몸을 내 보이는 것은 단순한 에로티시즘이 아니라 생명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그는 철학자 김용옥씨의 막내 딸이다. 1999년 미국으로 건너가 컬럼비아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플래트 인스티튜트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하지만 2005년부터 사진 쪽으로 방향을 틀어 2007년 뉴욕타임스에 소개되면서 국제 사진계에서 주목을 받았다. 같은 해 대중잡지 <에스콰이어>가 진행한 '미국의 최상,최고의 작가(America's Bestand Brightest)'에 선정되기도 했다.

국내 데뷔전 형식으로 마련한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나도(裸都)의 우수'.뉴욕 맨해튼 브리지를 비롯해 디트로이트의 역사,파리 납골당과 탑,하수구,문닫은 공장과 발전소 등 대도시의 버려진 공간을 자신의 누드와 함께 리얼하게 포착한 작품 50점이 걸린다.

"세상의 소외된 면이 응집된 곳이라서 쇠락한 도심풍경만 찍는다"는 작가의 카메라는 그동안 유골이 널려있는 프랑스 파리의 칸타콤 납골당,인공적이고 위선적인 공간인 맨해튼 브리지,재개발로 철거된 마을의 주인 없는 가옥,홈리스들이 거주하는 뉴욕 지하철 터널 등에 포커스를 맞춰왔다.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지만 원래 의사가 꿈이었어요. 해부학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도시탐험가 친구들을 만나면서 뉴욕이란 도시 전체를 하나의 유기체로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도시를 해부하고 싶었고,보이지 않는 내면을 벗겨내고 싶었죠."

그의 데카당스한 배경 속에는 늘 자신의 누드가 있다. 에덴의 동산이 아니라 21세기 문명의 도시 그늘에서 서성거리는 '이브'인 셈이다.

그는 도심의 버려진 풍경과 자신의 누드를 함께 찍은 이유에 대해 "사진을 찍다보니 무언가 비어있다는 느낌을 받아 생명체를 삽입하고 싶어서 모델이 되기로 작정했다"며 "가상 인물이 화면에 들어가자 험악하고 위험한 공간들이 서서히 깨어나면서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판매 수익금 일부는 도시화로 소외된 계층에 전달할 예정이다. (02) 519-0800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