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홍콩을 대표하는 기업인 리앤펑(Li & Fung)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단순히 이 책의 공동 저자가 리앤펑의 최고경영자들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리앤펑이야말로 저자들이 주장하는 국제화 3.0 시대에 독특한 글로벌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시킨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리앤펑 그룹은 2006년 기준으로 87억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세계 40개국에 걸쳐 2만4000명의 종업원을 보유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이다. 같은 기간 자동차 기업 GM의 매출이 1926억달러임을 감안하면 별것 아닌 것 같은 리앤펑이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단 하나의 공장도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공급사슬 관리를 통해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경 없는 평평한 세상에서 매출을 일으키는 차세대 사업모델을 만든 기업이 바로 리앤펑이다.

리앤펑그룹의 최고경영자들은 자신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에 비유하면서 '네트워크 편성(orchestration)'이라는 독특한 경영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에게 소유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전 세계에 산재한 8300개의 공급업자로 이루어진 리앤펑의 네트워크를 조율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고객이 남성용 반바지 30만벌을 홍콩의 리앤펑에 주문하면 단추는 중국,지퍼는 일본,실은 파키스탄에서 조달한다. 파키스탄에서 받은 실은 중국으로 보내 직물로 짜서 염색하고 이 모든 것을 꿰매는 작업은 방글라데시의 공장이 담당한다. 리앤펑은 단 한 개의 자체 공장도,단 한 명의 재봉사도 없지만 다양한 공급업자들을 진두지휘해서 한 달 뒤에 주문을 선적할 수 있다. 리앤펑 외에도 이베이나 나이키 같은 기업들이 이미 유사한 시도를 하고 있다.

네트워크의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보면 경쟁은 기업 대 기업 간 구도가 아니라 네트워크 간 경쟁으로 바뀌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분산된 네트워크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통제시스템 대신 교육훈련은 물론,적극적인 권한 이양과 신뢰를 필요로 한다. 소유권이 없는 편성자는 직접 명령하고 통제하는 대신에 오케스트라의 초청 지휘자처럼 각자의 역할을 조율하면서 공급업자들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동현(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