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에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즐거운 편지'는 시인이 고등학교 3학년이던 18세 때 연상의 여인을 사모하며 쓴 연애시다. 지금도 연인들에게 널리 애송되는 이 시는 영화 '편지'와 '8월의 크리스마스'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시인의 애틋한 마음은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는 반어적 표현과 함께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성숙함으로 승화되면서 '그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라는 영속성으로 확장된다.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말이다. 결과보다 과정에 맞춰진 시간의 초침.남녀 간의 사랑뿐만 아니라 생명과 의지의 인생 전역을 관통하는 의미다. 우리는 그 대상이 사람이든,어떠한 일이든,기다리는 시간만큼은 그가 올 것이며 그 일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소망을 갖는다.

2000년 3월11일,중국 선양의 중산공원.폭설을 뚫고 500명의 암환자가 모였다. 이들은 '생명의 자물쇠'를 올림픽 오륜 고리에 걸며 "2008년까지 살 수 있다면 함께 베이징 올림픽을 보러 가자"고 약속했다. 서로의 손을 꼭 쥔 채 "병마와 꾸준히 싸워나가겠다"고 선언하는 이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7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동지들이 곁을 떠났지만 끝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20명은 암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아 베이징 올림픽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스스로 채웠던 '생명의 자물쇠'를 풀며 '기다림'이라는 이름의 희망에 감사했다. 그렇다.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

고두현 기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