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외과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는 소 질병인 우두를 앓다가 회복되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에 착안해 우두 고름으로 백신을 만들어 8살짜리 소년에게 접종하는 데 성공했다. 1796년의 일이다. 그 후 백신을 체계화한 인물은 파스퇴르다. '백신(vaccine)'이란 이름도 파스퇴르가 소를 뜻하는 라틴어 '바차(vacca)'에서 따다 붙였다.

소아마비 백신을 만들어낸 사람은 미국 의학자 조너스 소크다. 곳곳에 창궐하던 소아마비를 퇴치하기 위해 200여 후보 물질을 실험한 끝에 1955년 백신을 개발했다. 엄청난 돈을 챙길 수 있었으나 백신 제조법을 무료 공개했다. 주변에서 만류하자 소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태양에 대해서도 특허 신청을 하는가. "

지금까지 나타난 인간의 질병은 3만가지를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신은 각종 질병에서 인류의 생명을 구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한 의학 성과로 꼽힌다. 장티푸스 디프테리아 백일해 파상풍 콜레라 등의 공포에서 해방된 것만 봐도 그렇다. 앞으로 인간질병의 반 이상을 백신으로 예방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신종플루 백신 확보를 위해 각국에 비상이 걸렸다. 우리나라도 내년 2월까지 600여만명 분의 백신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700여만명 분은 수입해 총 1300여만명에게 접종한다는 계획이지만 그게 쉽지 않은 모양이다. 신종플루 백신은 항생제를 먹이지 않고 키운 닭에서 나온 '청정 유정란'에 바이러스 균주(菌株)를 넣어 배양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청정 유정란을 얻으려면 닭을 6개월여 동안 특수시설에서 키워야하는데다 계란 하나에서 1.5명분의 백신 밖에 얻지 못하다 보니 국제 백신시장에서 물량 확보를 위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백신의 경우 질병이 유행하기 전에 항체가 형성될 수 있도록 적기에,필요한 양을 공급하는 게 관건이다. 신종 플루 10월 대유행 설이 파다한데도 우리는 백신을 11월께부터 영유아 만성질환자 등에만 선별적으로 접종해야 하는 상황이라니 딱한 노릇이다. 백신을 얻기 위해 웃돈을 얹어주거나 권력 · 연줄을 동원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신종플루의 실상과 예방법을 정확하게 알려 지나친 공포가 퍼지는 것을 막으면서 공공 · 민간의료 체계를 연계해 총력 대응하는 길 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