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와 싸운 1년… '스타' 버냉키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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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냉키, 부시 이어 오바마 정부서도 '경제수장'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을 연임시키기로 한 것은 경제위기 와중에 통화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경제를 확실히 살리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오바마 대통령은 25일 "자동차산업이 회생 조짐을 보이고 주택 가격과 기업 투자가 안정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완전한 경제 회복으로 가는 길은 멀다"며 "버냉키 의장이 일을 계속 할 필요가 있다"고 재지명 이유를 밝혔다. 버냉키 의장은 이에 대해 "안정적인 경제와 금융환경을 회복해야 하는 우리의 목적은 바뀌지 않았다"며 "최선을 다해 우리 경제가 굳건한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일조하겠다"고 화답했다. 램 이매뉴얼 백악관 비서실장,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 등 백악관 경제팀도 모두 버냉키의 재지명을 추천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원 인준도 경제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 한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2월 앨런 그린스펀 의장의 뒤를 이어 미 통화정책 수장이 된 버냉키 의장은 취임 초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금융위기의 싹을 간과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8년 들어 주택시장이 곤두박질치며 금융사들의 모기지 관련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금융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6월 기자회견에서 "금융위기가 터진 뒤 버냉키 의장의 업무 수행능력이 탁월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CNBC도 이날 "지난 1년 동안 금융위기와 싸우는 과정에서 버냉키 의장이 스타로 떠올랐다"고 보도했다.
대공황 당시의 통화정책을 연구한 학자 출신답게 버냉키 의장은 금융위기에 맞선 통화정책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지난 주말 FRB 연례 컨퍼런스인 잭슨홀 미팅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부절적한 통화정책이 경제를 멍들게 하고 정책 비용 부담을 키운 사례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조적으로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 상황에 맞서 자신은 신속하고 강력한 조치를 통해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세계 경제를 구해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경기침체와 금융위기가 동시에 터진 가운데 버냉키 의장이 빼 든 칼은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기 위해 금융사에 대규모 유동성을 쏟아붓고 금리를 낮춘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위기의 책임이 있는 월가 대형은행들만 혜택을 본다는 비판 여론도 적지 않았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 논란도 빚어졌다.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메릴린치가 새주인을 찾는 데도 막후 핵심 역할을 했다. 긴박한 상황에서 해결사 역할을 하다보니 무리를 빚기도 했다. 지난 6월 의회 청문회에 불려나온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지만 버냉키 의장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에 부당한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원들의 질책에 대해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고 당당히 맞서 도덕성 위기를 넘겼다.
자산 규모가 6000억달러에 달하는 리먼브러더스 파산을 방치해 신용위기를 키웠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버냉키 의장은 담보가 부족한 탓에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고 여러차례 해명했다. 리먼 파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할 일을 다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FRB는 작년 12월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금융사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장기 모기지증권 매입에 나섰다. 각국 중앙은행 간 정책 공조면에서도 두각을 보였다. 특히 해외에 달러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스와프 계약을 맺은 것도 적절한 조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과감한 통화정책에 힘입어 세계경제가 조만간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란 게 버냉키 의장의 자평이다.
월가는 물론 학계에서도 버냉키 의장의 연임을 당연한 결정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도 "그가 취한 저금리 정책과 금융사에 대한 대출 장려 조치들은 장기 경기 침체를 피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버냉키 의장 연임 소식으로 이날 미 뉴욕증시 다우지수는 상승세로 출발했다.
뉴욕=이익원/워싱턴=김홍열 특파원 ik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