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지는 환절기가 다가오면서 신종 인플루엔자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전국 초 · 중 · 고교 중 46개교가 이미 개학을 연기했거나 개학한 뒤 다시 휴교에 들어갔으며 그동안 신종플루 치료 병원에서 빠져 있던 서울대병원도 사태가 심상치 않자 치료 대열에 참여했다. 신종플루에 대한 보도가 잇따르자 전국 할인점에서는 마스크와 손세정제를 찾는 사람이 급증,해당 물품이 동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한의사협회는 신종플루의 대유행을 막기 위해 국가재난사태 선포와 국가재난대책본부 출범을 촉구했다. 전국이 신종플루 패닉에 빠져들 조심마저 나타나고 있다.

신종플루 감염자 수가 3300명을 넘어서는 등 대량 확산 조짐을 보이면서 신종플루 예방 백신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신종플루 치료제는 강제실시권을 발동할 경우 물량 확보에 문제가 없지만,백신은 필수원료인 유정란(수정된 계란)이 '팬데믹(신종플루 대량 확산)'에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25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사들은 정부가 타미플루 등 신종플루 치료제를 충분히 확보할 수 없는 '만약의 사태'가 벌어질 경우 강제실시권 등을 통해 신종플루 치료제 복제약은 대량 생산할 수 있다. 타미플루 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은 유한양행 한미약품 종근당 씨티씨바이오 등 10여개사.

업계 관계자는 "2005년 조류독감 창궐시 치료제 확보가 이슈화되면서 업체들 대다수가 자체 시험생산을 통해 생산기술을 경쟁적으로 개발했다"며 "강제실시권만 발동되면 필요량을 문제없이 공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생산능력도 충분하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씨티씨바이오 관계자는 "하루 24시간 시설을 풀 가동할 경우 한 달에 600만명분의 타미플루를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백신 생산에 필수인 유정란이다. 백신은 유정란 또는 유전자재조합 미생물을 이용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선 아직 닭의 유정란에 바이러스 균주를 접종하는 방식으로만 생산이 가능하다. 이와 관련,녹십자는 오는 11월 양산을 목표로 1200만도스(600만명분)의 백신을 생산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전남 화순의 유정란 부화업체인 청란과 계약을 체결,이 회사가 확보한 3개 농장으로부터 유정란을 공급받기로 돼 있다. 하지만 이 농장에서 올해 안에 생산 가능한 유정란은 최대 400만개 정도.생산수율(유정란 1개당 최대 1.5도스)을 감안하더라도 1200만도스를 생산하기에는 부족하다. 이 유정란도 다 신종플루 백신 생산에만 쓸 수 없다. 일반 계절독감도 유정란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재 녹십자는 유정란 확보 특별팀을 꾸려 전국 양계농가를 뒤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반농가에서 수집한 유정란이 백신생산용에 필수인 청정유정란과는 거리가 있어 원료로 활용될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유정란을 수입하기도 어렵다. 유정란을 포함한 생란은 유통기한이 짧아 수입 도중 부패하는 까닭이다. 녹십자가 '면역증강제(백신의 양을 최대 4배로 늘릴 수 있는 화학물질)'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만약 백신 수요가 600만명분 이상으로 급격히 증가하는 대량 감염 사태가 올해안에 발생할 경우 백신 자급자족이 사실상 어려워지게 되는 셈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일양약품이 유정란 방식으로 연간 최대 6000만도스의 백신을 양산할 수 있는 공장 착공에 나서 국내 업체 간 유정란 확보경쟁까지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